고효진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고효진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면 실제로 그 사람이 기도의 도움을 받아 질병 회복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 같은 연구가 실제로 미국 유명 잡지에 소개된 일이 있다. 몇 차례 비슷한 연구를 했고 그중 일부분에 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즉 봉사자들이 중환자실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일정 기간 꾸준히 기도하도록 한 후 기도를 받은 그룹과 받지 못한 그룹의 회복과정을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기도를 받은 그룹에서 통계적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흥미로운 결과지만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종교의 비합리성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연구를 지적하며 종교적 발상이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연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기도와 용서 같은 종교적 행위가 우리 정신 및 신체 건강에 좋은 효과를 준다는 연구 결과는 얼마든지 있다. 기도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이완해 혈압이 안정되고 심박동 수와 호흡수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남을 위한 기도가 자신이 가치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묵상을 위주로 하는 기도가 청원이나 의례적인 기도보다 효과적이다. 오랫동안 종교와 정신건강에 대해 연구해 온 듀크대학 쾨니히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비롯해 다른 많은 연구자의 결과를 종합 분석했다. 그 결과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종교가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종교활동이나 신앙생활이 정신과질환 발병을 줄이고 회복을 촉진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정신과학에서는 종교가 정신과 진료를 위한 방법이라는 걸 배제한다. 정신과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경우 "신은 전지전능한 아버지에 대한 인류의 염원을 표상할 뿐이며 기도나 종교의식은 신경증 환자의 강박적 행동과 유사하다"고 했다. 인지행동치료 발달에 기반을 닦은 알버트 엘리스도 "종교는 여러 면에서 부적절한 생각이나 정서적 장애와 비슷하기 때문에 덜 종교적일수록 정서적으로 더 건강하다"고 주장했으며, 웬델 워터스는 "종교적 교리와 가르침은 정신건강에 해로우며 나아가서는 신체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신과 교육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학계 분위기를 바탕으로 정신병적 현상이나 종교적 편견 등과 같은 종교의 부정적인 면을 주로 다뤄왔다. 이런 교육 상황이 정신의학에서 종교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앞서 소개한 학자와 같은 연구자들이 꾸준히 종교의 영향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를 입증하고자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사실 프로이트도 종교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종교가 신경질환의 치료에 도움이 되며 본능을 잠재우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최근 정신의학계에서도 종교나 영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신과 교과과정에 이를 반영해 교육하고 있다. 임상 치료에서도 종교나 영성을 활용하는 연구와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삶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태도를 가지게 해 건강한 세계관을 만든다. 기도, 명상 등을 통해 기쁨, 경외심, 감사하는 마음 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사춘기, 결혼, 죽음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에 잘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한다. 또 알코올과 약물 중독, 혼외정사, 범죄 행동 등을 금지하므로 사회적 규범에 적합한 행동과 지침을 제공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유발하고 종교적 기준을 맞추지 못한 사람에게 사회적 고립을 야기한다. 독선적이고 경직된 가치관을 고집하기도 한다.

한편 종교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같은 종교적 생활이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내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인다는 설명도 있다. 즉 절대자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내재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종교를 단순히 사교적 모임의 하나로 여기거나 마음의 위로와 안정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외향적 태도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상기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보다는 얼마나 진정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건강 혹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의 정신건강은 물론 다른 사람의 건강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이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고효진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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