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담회에 참석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약의 효능과 기전에 대한 강의를 신기해하면서 듣고 있었지. 울혈성 심부전 환자에게 쓰면 입원율과 사망률을 약 20% 정도 낮춘다고 그러네. 문제는 이 약이 사용된 지 벌써 2년이 됐다는군. 의사로서 퇴물이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같이 갔던 내과 의사도 나와 비슷했다는 거야."

미국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는 의과대학 동기가 최근 보낸 SNS 대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전문 의학지식을 실시간으로 소화해 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는 의사의 한계를 보여주는 솔직함이 묻어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24시간 내내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피곤해 하지도 않으며 아인슈타인보다 좋은 머리로 방대한 양의 전문 의학지식을 스스로 학습하고 분석해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슈퍼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 아직 검증에 있어 일부 논란이 있지만 IBM 이 개발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Watson)이 이런 슈퍼의사일수 있다. 또 암 치료에 특화된 인공지능 의사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는 이미 미국의 대표적인 암센터인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MSKCC)에서 실제 암 환자 진료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점차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최근 국내 일부 병원에도 인공지능 의사 왓슨이 도입돼 진료 현장에서 암 전문의의 중요한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인공 지능 의사가 이미 우리 곁으로 다가와 더 이상 실험실이나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로 만날 수 있는 현실의 존재가 됐다.

현실이 된 인공 지능 의사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나 방대한 양의 의학정보와 전문지식의 분석은 인간 의사가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보완이 될 수 있다. 특히 진료 과정에서 중요시 여기는 다른 의료진을 통해 이뤄지는 제2의 의견(2nd opinion)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가령, 지역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제2의 의견을 듣기위해 서울의 유명 병원을 찾는 번거로운 관행도 줄어 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의료계에서는 앞으로 인공지능 의사가 궁극적으로 의사의 많은 영역을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래의 의사들은 인공지능 의사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간미가 넘치는 의사로 키워져야만 인공지능 의사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가진 의사로 살아남을 수 있고, 따라서 의과대학 교육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의 역할은 환자의 정서적 지지에 머물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방대한 양의 의학정보와 지식을 기계학습을 통해 학습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 되리라 생각이 되지만 인공지능 의사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기 보다 이를 이용해 환자의 여러 상황을 종합해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최종 책임은 인간 의사에게 있다고 본다.

아직 인공지능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앞으로의 큰 흐름을 보았을 때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이미 됐다고 본다. 연소 기관이, 전기에너지가, 인터넷이 이끈 정보기술이 우리의 삶과 의료환경을 바꿔 왔고 또 그 변화의 물결을 인간들이 잘 적응해 발전시켜 왔듯이 인공지능이 중심이 된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의료계는 인공지능 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의료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 인공지능 의사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최원준 건양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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