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영 대전보건대 교수
유창영 대전보건대 교수
지난 연말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더니 조금 뜸하다 했는데 또 새해 복 많이 받으란다. 말로만이 아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카카오톡으로 복이 쏟아져 들어온다. 설이 두 번이나 있다 보니 해마다 벌어지는 참 행복한 풍경이다. 그러면 복(福)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서경(書經)에서 말하는 `오복(五福)`이 그 원조다. 우선 오래 살고(壽) 재산도 많고(富) 몸과 마음이 건강(康寧)해야 한다. 거기에다 덕을 쌓아 베풀며(攸好德) 마지막으로 편안한 죽음(考終命)이니, 바로 이 `편안한 죽음`을 옛사람들은 좀처럼 얻기 힘든 최상의 복으로 여겼다. 헌데 편안하다 못해 웃으며 죽은 사람이 있으니 이가 곧 조선 초 명신 허조(許稠·1369-1439)다.

허조는 태종 세종 연간의 강직한 관리였다. 워낙 깐깐한데다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그 서슬 퍼런 태종도 결국엔 두 손을 들고 아들 세종에게 "이 사람은 나의 주춧돌이다"라며 극구 추천한 인물이다. 세종 역시 세자시절 그가 자신의 스승으로 온다는 얘길 듣곤 "아이쿠 죽었구나" 할 정도였다니 그 악명은 가히 알 만하다. 청렴함으로 말하자면 정말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날 사람이었고 먹는 것은 허기만 면할 정도, 입는 것은 몸만 가리면 된다는 주의. 바짝 마른 체격에 어깨와 등이 심하게 굽어 별명이 `말라깽이 재상`.

젊은 관리들에겐 걸핏하면 "자넨 인사도 안 하나?", "자네 복장이 그게 뭔가?" 했다니 그 인기도는 불문가지. 여색에도 원체 관심이 없어 주위에서 부부관계가 뭔지 알긴 하느냐고 놀렸더니 "그러면 내 아들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졌겠느냐"며 웃었다고 한다. 자식에게 벌을 줄 때도 반드시 사당에 먼저 고했다는 철두철미 원칙주의자였다.

세종 시절 10년 가까이 이조판서직을 맡아 인재등용의 핵심역할을 했으며 천거된 인재를 철저히 검증했고 선발된 인재를 보호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세종 대에 유능한 신하들이 많았던 건 대개 그의 공이었다고 한다. 또한 세종의 여러 정책에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며 쓴 소리를 거듭하니 그에 질린 세종은 "허조는 고집불통이다"라며 진절머리를 냈으나 그 끈질김과 진정성에 백기를 들곤 "허조의 말이 옳다", "합당하다"며 그의 의견을 따랐다. 호탕하지도 않았고 원만한 성품도 아니었으나 동료 황희 맹사성 등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조선조 제일가는 세종의 성세를 뒷받침했다.

세종 21년 12월, 병이 위급해지자 당시 좌의정이던 허조는 "내 나이 일흔이 지났고 지위가 정승에 이르렀으며 성상의 은총을 받아 간언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셨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였다. 이 날 형 허주가 들어와 보니 허조는 흔연히 웃고 있었고 그 아내가 들여다보아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옆에서 지키는 아들을 보며 역시 웃고 다른 말은 없었다. 곧 죽으니 나이 일흔하나였다.

웃으면서 편안히 세상을 뜬 허조는 오복의 정점을 찍으며 최상의 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피곤한 인물을 등용하고 들어주고 행한 세종임금이 없었다면 어찌 그는 그런 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세종의 성공은 다 이유가 있었다. 한없이 뒤숭숭한 작금의 정국, `쓴 소리 하는 신하, 받아들이는 임금` 참으로 꿈 같고도 부러운 얘기 아닌가.

내일이 진짜 설날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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