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한령(限韓令)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나고 있다. 단어를 그대로 해석해 보면 한국을 제한하는 명령이다. 얼핏 보기에도 매우 공격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한한령은 중국 언론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가 다양한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한국드라마와 예능, 영화 프로그램의 방영과 인터넷 업로드를 금지하는 한한령 조치에 이어 춘절 연휴에 한국행 전세기 신규취항을 불허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는 경제분야에서 본격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한국산 제품의 수입 불합격 처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문화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류(韓流) 열풍을 불어 일으키는 등 대단한 성과들을 이뤄냈다. 이어 힘입어 한류는 새로운 글로벌 경쟁력을 창출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도 한류의 경쟁력은 매우 크다. 이를 통해 한국의 관련 문화계는 그동안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 등과 관련해서 중국은 한국의 문화 관련 산업에 대해 상당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가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우선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문화산업 발전 정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자국의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 차원에서 문화산업진흥계획 등의 정책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외국의 기업들은 중국의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중국의 관련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쟁력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중국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제한할 수 없는데 이번의 사드 배치 결정은 아주 좋은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 상품이 중국시장에서 주춤하는 틈을 이용해 일본의 관련 상품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문화부는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이 자극적인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규제를 상당히 했는데 작년 한 해 동안 일본의 영화는 무려 11편이나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 중 9편은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중국 진출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한중일의 삼각 구도 속에서 한국의 문화산업이 중국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한류(韓流)라는 조류에서 안위하고 있었다면 한한령(限韓令)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신한류(新韓流)의 출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한령이 가지는 근본적인 모순은 문화수요는 정책으로 통제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비시장적인 정책은 오히려 한국 기업이든 중국 기업이든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의 문화 관련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단순히 한국의 문화 관련 상품을 제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관련 기업도 마찬가지로 시장의 경쟁력 저하를 단순히 정부의 정책 탓으로만 돌리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콘텐츠 개발을 해 나가야 한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개발만이 시장수요를 창출할 수 있으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모두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한령을 틈타 새로운 시장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관련 상품들도 한한령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문화 콘텐츠 상품들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신한류(新韓流)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을 직시해야 할 때다. 김상욱 배재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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