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라는 말이 있다. 대대로 그곳에서 나고, 자라서, 살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을 그 지역 토박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친근함이 느껴진다. 필자가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 중 토박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그 지역 공무원이다. 그곳에서 나서 자랐으니 고도 구석구석의 역사와 변화, 그리고 주변사정을 잘 알고 있는 토박이들이다. 문화재 업무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꺼려하는 분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공주, 부여, 익산처럼 역사자원이 많은 고도지역의 공무원들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이고, 그들 중 몇몇은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을 마다하고 5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실질적으로 고도의 모습을 지키고, 정체성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곳에 사는 이들이다.

지역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고도에 사는 토박이 주민들이다. 익산의 경우 이들은 미륵사지 근처의 금마면, 제석사지 옆 궁평마을, 왕궁리유적 앞 탑리마을에 사는 사람들로 그들의 집, 마당, 울타리 등은 유적지 주변의 시각적 모습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이들을 그저 문화재로 인해 재산권 행사에 규제를 받는 것을 불평하는 사람정도로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고도를 지켜온 이들의 희생을 폄하하는 것이다. 일본의 마을만들기 사업이나 영국의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에서 지역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지역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지역 주민들을 고도의 공적인 가치를 지키는 적극적인 주체로 대우하고, 그들이 고도보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와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들과 함께 그 지역 특산물을 생산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고도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경제적 주체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내 대학기관이나 연구단체에서 고도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고, 잊혀진 사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은 고도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활용할 지적 자원을 발굴해 내는 주체이다.

고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남아있는 유적과 유구, 유물 등 물리적 유산만을 중시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도의 가치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잘 관리하는 주체가 없으면 고도는 의미 없는 과거의 물질적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고도에 살며, 고도에 역사의 색을 입히는 주민, 지속가능한 경제적 기반과 지적자원을 제공하는 이들이 책임감 있는 공무원과 함께 고도보존의 주체로서 각자의 몫을 할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과거가 아닌 현재의 고도가 될 수 있다. 이수정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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