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4년 1678년 상평통보가 널리 퍼지기 전까지 화폐로 가장 많이 활용되었던 것은 주식인 쌀이었다. 세금으로 쌀을 내야만 했고, 소작농의 노동의 대가 또한 쌀이었다. 농경중심사회였던 우리에게 쌀은 식탁의 중심이었고 경제의 중심이었다.

알다시피 쌀은 벼 열매의 껍질을 벗겨 낸 알맹이다. 기원전 6,000 전 인도의 아삼(Assam), 중국의 윈난(雲南)에서 재배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4000년 전에 들어왔다. 단위면적 당 수확량이 상당히 많아 인구부양력이 높고, 열량이 많아 효율적이다. 전세계 쌀 생산량의 92%를 아시아에서 수확할 만큼, 아시아 식탁의 주인이다. 중국의 차오판, 베트남의 쌀국수,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등 아시아 전역에서 쌀을 요리해 주식으로 삼는다.

유럽의 최다 쌀 생산국은 이탈리아다. 포 강(江)과 알프스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 롬바르디아가 이탈리아 쌀의 대표지역이다. 밀을 선호하는 유럽에서 유독 이탈리아의 쌀 생산이 높은 건 `리조또(risotto)` 덕분이다. 해안중심의 남부 이탈리아의 자랑이 파스타 라고 한다면, 산과 강 위주의 북부 이탈리아의 대표음식은 쌀로 만든 리조또다. 16세기 밀라노에서 탄생한 리조또는 `쌀`을 의미하는 이태리어 리조(riso)와 `적다`를 뜻을 가진 토(tto)의 합친 말이다. 생쌀과 재료들을 살짝 볶아 육수에 끓여 익힌 후 치즈로 맛을 낸다. 밥을 끈기 있게 만들기 위해서 씻지 않은 쌀을 사용한다. 쌀을 씻으면 끈적끈적 차지게 만들어주는 전분 또한 씻겨나가기 때문. 마지막에 치즈, 크림, 버터 등으로 ₁밥알이 끈적이게, ₂전체적으로 잘 섞이게, 그리고 ₃농도를 잡아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만테카레(mantecare)`라 한다. 파스타와는 달리, 리조또는 잠시 식힌 후 먹어야 더 맛있다.

흔히 리조또와 헷갈려하는 쌀요리는 바로 터키의 `필라프(Pilf)`, 필라프는 리조또보다는 우리의 볶음밥과 더 닮아있다. 육수를 넣고 끓여준다는 방식은 같지만 밥알이 황갈색 빛이 띄도록 더 세게, 더 오래 볶아주는 것에 차이가 있다. 밥알은 끈기가 없고 한 톨씩 떨어져야 한다. 이슬람 문화권의 음식이며, 필라프라는 이름은 터키식 이름인 필라우(Pilav)에서 차용되었다.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알렌산더 대왕에 의해 고대 그리스에 전해졌고, 소비에트 연방 시절엔 중앙아시아의 필라프가 퍼져나가 소련 요리의 한 축을 담당했다. 옛 터키에서는 며느리를 맞을 때 필라프를 만들게 한 후 밥알을 벽에 붙여 바로 떨어져야 인정을 해줬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전세계 75억 인구의 60퍼센트가 아시아에 밀집해 있다. 이는 인구부양력이 높은 쌀 덕분이다. 가히 `미(米)라클 쌀`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쌀의 생산량과 품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비하려 `하이브리드 쌀` 등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 결과는 신통치 않다. 다시 한번 미(米)라클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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