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 9473명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명단에는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인, 연극인, 연화인, 출판인 등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 명단을 보고 필자는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몇 십 명이나 몇 백 명도 아닌 일만 명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을 요주의 인물로 등록하여 각종 불이익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정권 차원에서 작성된 듯한 그 명단이 조악하여 정치(精緻)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작성한 세력이 저급한 인식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간에 떠도는 문서에 의하면,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월호 비극과 관련하여 시국선언을 하거나 정부 시행령을 반대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이나 박원순과 같은 특정한 야당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시행하는 문화예술인의 지원 기준을 작품의 수월성이나 예술성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으로 삼은 것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한 나라의 정부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가운데서도 정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특정한 정파나 지도자만을 위한 정부는 독재국가에서나 성립 가능한 것이다. 독재국가에서 찬란한 문화가 꽃피운다는 것은 사막의 모래알에서 싹이 트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그러잖아도 곤궁한 문화예술인들은 정부 지원에 상당 부분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인 표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창작 기반이나 생활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은 치졸한 일이다.

블랙리스트는 다른 생각,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독재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블랙리스트를 보면 현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국정 지표로 내세운 문화융성이라는 구호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화융성이라는 이름을 앞세우면서 국민 세금을 유용하여 저급한 정치 놀음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문화예술은 교조적인 정치 구호에 불과하다. 독재 국가에서 문화예술이 발달할 수 없는 것은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박탈당한 국민의 자유를 대신하는 것은 개인 권력을 절대시하고 장기화하기 위한 우상화로 나아간다. 이번에 알려진 블랙리스트는 21세기 대명천지에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그런 황당한 일을 벌이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블랙리스트의 작성 경위에 대해서는 현재 특검에서 수사 중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의 의도와 목적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 만한 일이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도 그동안의 소문들만 들어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작성(지시)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철저한 반성과 응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치가 잘못되었을 때는 정권이 바뀌면 원상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화예술은 한번 잘못 틀어지면 원상회복을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문화예술인의 위기라기보다는 문화예술 정책의 위기이다. 현 정부가 야심차게 내세웠던 문화콘텐츠 관련 사업들도 이미 투명성과 공공성을 상실했다. 따라서 시대착오적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문화예술 사업을 도탄에 빠뜨려 나라를 좀먹는 자들이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마땅하다.

지난해 여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우수 문예지 지원사업 폐지에 대한 항의를 위해 필자는 모 계간지의 주간 자격으로 다른 문예지 주간들과 함께 만났었다. 우수 문예지 지원 사업은 가난한 문인들의 원고료 사업이고 예산 규모도 많지 않으니 원상회복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왔다. 아마도 문학인들은 그때 이미 통째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았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나라가 하루빨리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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