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찾아가는 진로교육이 대세다

 의료인 직업 체험 중인 당진 신평중 학생들
의료인 직업 체험 중인 당진 신평중 학생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아직 꿈이 여물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할 일(직업)'에 대한 체험 학습은 꿈을 찾는 소중한 모멘텀이 된다. '진로·직업 체험'은 자유학기제와 맞물려 다양한 형태로 학교 현장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밖을 벗어나지 않고도 교실 안에서 손쉽게 체험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학교로 찾아가는 진로체험활동'이다.

찾아가는 진로체험은 크게 두가지 의미에서 학교와 학생, 학부모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우선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학교 밖 활동에 대한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기 위한 취지가 크게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단순 견학에서 벗어나 학생 모두가 체험 기회를 고르게 누리는 효과도 크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좋다는 의미다. 학교가 반기는 이유다. 두번째는 학생의 변화다. 학교 교실이 직업 체험의 장이 되면서 학생들은 평소 관심 있던 직업을 솔직하게 요구한다. 직업체험날은 교사, 의사, 법조인 등 천편일률적인 꿈에서 벗어나 뮤지컬 배우, 항공조종사, 과학수사대, 파티시에(patissier) 등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손짓하는 끼가 발동하는 날이다. 학생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고, 곁에서 참관하는 교사들도 연신 '엄지 척(thumb up)'이다.

◇졸업선물로 진로체험교실 마련

지난해 대전 매봉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6학년 졸업생들을 위한 선물 증정식이다. 흥미롭게도 선물은 '진로체험교실'로 전해졌다. 강기석 교장이 졸업하는 제자들을 위해 마련한 진로체험교실은 9개 교실에서 진행됐다. 6학년 졸업생들은 △판사·검사·변호사 △PD·아나운서·기자 △의사·약사·수의사 △요리사 △항공조종사·승무원 △가수·뮤지컬배우 △경찰·과학수사대 △드론조종사 △웹툰작가 등 무려 20여 개 직업을 돌아가면서 체험했다. 물론 깜짝 이벤트는 학생들에게 설문조사 형태로 사전 선호도 조사를 거쳤다.

강 교장은 "큰 꿈이 위대한 사람을 만들 듯 꿈 많은 10대 청소년 시절의 체험은 미래의 소중한 거름이 된다"며 "졸업을 앞둔 제자들을 위해 학교가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진로체험활동을 선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체험을 통해 자기를 이해하고, 향후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는 데 구체적인 설계와 방향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다인 학생(6학년)은 "평소 관심을 가졌던 경찰 과학수사대를 직접 체험해 보면서 업무 분야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의 역할이 무섭고 위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과학수사와 사이버수사를 통해 범죄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더 큰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생과 교사 함께 이해하는 진로체험

대전 관평초등학교는 진로직업체험에 누구 보다 열정적이다. '학교는 즐거운 곳이면서 아이들이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는 김대혁 교장의 교육철학 때문이다. 김 교장은 지난해 9월 공모제 초빙교장으로 관평초등학교에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사제동행 자전거여행'을 실시했다. 주말마다 학생들과 함께 학교 인근을 자전거로 누비면서 학교 안팎을 교육 현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김 교장은 지난해 12월 15일과 16일 이틀 동안 5학년과 6학년 학생 모두가 참여한 직업체험교실을 열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하려면 꿈을 찾는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고, 초등학생 때 최대한 많은 체험을 통해 흥미와 적성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구체화했다.

평소 언론인을 꿈 꾸는 전호정 학생(6학년)은 "친구들과 5명이 한팀이 돼 아나운서(앵커), 기자, 카메라기자, 프로듀서 등을 체험했다"며 "역할을 분담해 직접 뉴스를 진행해 보면서 제작과정을 알게 됐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혁 교장은 최근 쓰지 않는 학교 내 창고를 고쳐 영화감상실로 꾸미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학생들과 영화 감상을 통해 꿈과 끼를 키워주기 위해서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바라보는 대전 관평초의 진로직업교육에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인성을 바탕으로 한 진로체험 '효과 만점'

자신의 꿈과 끼를 전공과 직업으로 연결하려는 좋은 취지가 자칫 '돈 잘 버는 직업군'에 대한 교육으로 변질된다면 낭패다. 대전 송촌초는 진로교육의 출발을 인성(人性)에서 찾는 학교다. 이은학 교장은 학교 자체적으로 '꿈 너머 꿈' 교재를 제작해 학생들에게 '나'가 아닌 '여러 사람'에게 유익한 꿈을 꾸도록 진로지도를 펼치고 있다.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등 이웃을 사랑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꿈을 실천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고, 꿈을 향한 도전과 열정을 키우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성교육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뒤에 가진 '학교로 찾아가는 진로직업체험'은 감동이 크다.

이 교장은 "인성과 진로교육은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인성의 기반을 닦은 뒤에 2학기 기말고사와 겨울방학 사이의 학생 지도취약시기에 진로체험을 실시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과의사가 꿈인 곽남훈 학생(6학년)은 "의사라는 직업은 공부 잘 하고 똑똑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진로체험을 통해 이타적인 마음을 키우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참되고, 바른 길 이끄는 진로체험

교육(敎育)의 사전적 의미가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쳐 인격을 길러 준다'는 점에서 진로체험은 참교육의 축소판이 되기도 한다. 충남 홍성내포초등학교의 찾아가는 진로직업체험은 학생들의 '자치법정'이 눈길을 끌었다. 법복을 입은 학생들은 '법'을 둘러 싼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와 학교와 일상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관련 법들을 배웠다. 또 학생 스스로 재판부(판사·검사·변호사)를 구성해 변호하고, 심문하고, 판결을 내리면서 갈등과 문제해결의 시간을 가졌다.

김민영 교장은 "자치법정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법과 관련된 직업군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치법정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을 법률가적인 생각으로 접근하도록 일깨웠다"며 "법관의 역할과 사명감을 통해 참되고, 바른 동량들로 성장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서윤 학생(5학년)은 "평소에 겪었던 직업체험은 대개 PPT를 보고, 직업에 관련된 내용을 배우는 정도였는데 이번 찾아가는 체험활동은 실제로 자치법정을 열고,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실제 법정처럼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물론 증인과 배심원의 역할까지 나눠서 참여해 판결 진행과정과 각 역할별 활동 등을 통해 법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관련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학교는 학생의 꿈·끼 키우는 인큐베이터

대전 전민중학교는 학생들이 평소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합한 인생목표와 진로개발 역량을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해 자유학기제가 전면 도입되자 이차숙 교장은 1학년 신입생들에게 "한 해 동안 자신의 스토리를 충실하게 써 보라"고 주문했다. 학생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학교가 독서, 동아리, 진로활동 등의 시스템을 제공하겠다는 일성(一聲)과 학생들의 꿈과 끼를 잘 키워내겠다는 다짐도 함께 했다.

전민중은 다채로운 진로교육으로 유명하다. 정호승 시인, 나태주 시인을 초청해 생생한 경험담과 시(詩) 작법을 듣기도 하고, 특목·자사고에 진학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공부법과 진학 준비요령을 소개하는 하는 멘토캠프를 열었다. 학교에서 실시한 모든 프로그램은 철저히 모니터링을 통해 평가되고, 문제점은 개선됐다. 이런 피드백 과정에서 방과후 및 자유학기제 전문업체인 에듀비전(대표 박춘자)과 함께 학교로 찾아가는 진로체험인 '드림 잡(job) 스쿨'을 펼친 것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차숙 교장은 "중학교 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체험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며 "다양한 직업체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고, 꿈과 재능을 찾아 긍정적 자아개념을 갖추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훈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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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제작과정 체험 중인 대전 관평초 학생들과 김대혁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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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사 체험 중인 대전전민중 학생들과 이차숙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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