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새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새

고장 난 녹음기 보다 더 나쁜 새

내 영혼을 들킬까봐 남의 말 뒤로 숨는 새

세상은 그런 새를 기르기를 원한다

그런 새를 만들려고

학교를 만들었고 입시를 만들었고

사법고시를, 언론고시를 만들었다

앵무새를 길러 놓으니 참 편해, 내 말을 다 해주잖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렇게……

참 고마워라,

숲에서 우는 소쩍새여, 꾀꼬리여, 부엉이여,

놀라워라

제 소리로 제 슬픔을 애통하며

에레미아 선지자처럼

천년세세

남의 슬픔을 관통하는 새

앵무새는 죽어도 못 따라 갈

영혼 고운

새해가 크게 밝았다. 무엇보다 감동이 물결치는 새벽이다. 지난해의 후반은 시민들의 촛불이 지켜온 순간들이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서 낡고 병든 태양을 힘껏 밀어내고 거대한 빛의 태양을 다시 불러온 아침이다. 그런 새해 아침.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통렬한 자기 성찰이 따라야 하겠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모두 비워버리고 그 길 위에 다시 새로운 길을 튼튼하게 놓아야 하는 것이니. 우리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어깨를 맞대고 작은 힘이라도 모으자. 그리고 이제 우리들 마음 안으로 촛불을 키워 그 정신과 열망들을 온전하게 지켜가자. 반복되는 모래시계 역사 위에 완전 새로운 역사를 쓰자.

이 시의 제목은 `서울의 우울`이고 `앵무새 기르기`는 부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지난 연대의 한국사회의 구조와 병폐, 모순과 갈등을 풍자적으로 비판적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시의 상황은 지금과도 너무나 흡사하다. 새장 속에 갇혀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여 반복하며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반성도 없는 우리시대 민낯을 보는 것이니. 새해가 밝았다고 하여 터무니없는 축복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아닌 법. 오늘부터 뜨는 태양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태양으로 기록하자. 시인·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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