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어머니로부터 "엄마들이 자녀에게 `엄마는 네 존재만으로도 행복하단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식처럼 느껴진다"는 고백을 듣게 되었다.

그 어머니는 바쁘게 일하며 아이들의 성적향상을 위해서 많은 뒷바라지를 해 주는 분이었다. 그러나 자녀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도 않았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아이는 태어나 1년 정도 지나면 혼자 걷게 된다. 스스로 움직여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겠는가? 또 얼마나 두렵겠는가?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자유로운 탐색을 할 수 있는 힘은 엄마에게서 나온다.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지치거나 위험을 느꼈을 때 언제든지 돌아가 위로받고 쉴 수 있는 엄마의 품이 있어야 아이들은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아이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주는 품이 없으면 자유로운 탐색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의 밑바탕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안전이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일차적으로는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성적이 좋아야 기를 펼 수 있는 조건적인 세계에 던져져 있다. 그런데 집에서 부모님까지 성적으로만 자녀를 평가하면 아이들은 쉴 항구가 없어진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재수용이 없을 때 아이들의 자유를 향한 성장은 상처를 입게 된다. 조건적인 세상에서의 요구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때 몸과 맘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두뇌학습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편도체에서 안전을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대뇌피질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고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은 어렵게 마련이다. 인간은 누구나 안전이 확보되어야 다음단계인 자유와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은 한 개인으로서 성장해서 독립하고 자유로워지길 원한다. 그러나 사랑과 안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인간성장의 딜레마이다. 건강한 인간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조건적인 성취경험의 확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이 맹목적으로 넘치게 되면 자녀는 무능하게 될 것이고, 무조건적 수용 없이 성취만 강요하면 병이 들거나 괴물로 자랄 것이다.

이상열 두뇌학습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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