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원전 폭발 대한민국 "매뉴얼은 없습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제작부터 개봉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4년 전부터 제작에 들어갔던 영화는 현실을 꿰뚫어 봤고, 영화 같은 현실인 요즘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는 탓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미 가까운 일본에서는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이 됐고,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한 경주에서는 지난 9월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원자력 발전소에 기대 사는 한 마을에서 시작한다. 영화 첫 장면에는 `재혁`(김남길)의 어린시절 친구들과의 대화로 시작한다. 원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원전을 큰 밥솥이라 하기도 하고, 어른들의 말의 빌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재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재혁은 그 곳에서 아버지를 잃고, 형도 잃었다. 그런 원자력 발전소가 싫지만 어머니의 성화에 매일 아침 그곳으로 출·퇴근한다. 재혁뿐 아니라 원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원전을 일터 삼아 삶을 이어간다. 그런 위험과 공존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던 그들의 삶에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원자력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국가의 무능, 개인 이기주의, 분노, 좌절, 희생 등이 영화에 그려진다. 영화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신화 속 `판도라`의 결말과 중첩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며 마무리 된다.

영화는 현실을 관통했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 정부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줬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공무원과 원전업자는 주민의 안전따위는 목전에 없었다. 원전 발생 후 실행해야 할 매뉴얼이 없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당당하게 없다고 말하는 관료나 회사의 손익을 계산하며 직원을 사지로 내모는 고위 임원은 언론을 통해 수 없이 봐온 캐릭터 중 하나였다. 또 언론을 통제하고 거짓 정보를 제공해 주민을 속이는 정부는 현실의 그것과 닮아 있었고, 정보를 독점한 총리는 관료의 탈을 썼을 뿐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그 아주머니와 다를 것 없었다.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희생자들의 영정을 걸어놓은 신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합동장례식장을 떠올리게 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가슴 아픈 많은 일들을 영화가 함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을 잃고 어머니, 시동생과 함께 살아가며 아들을 키우는 정혜 역할을 맡은 문정희도 풍부한 감정 연기로 관객들을 울렸다. 이 밖에 이경영은 젊은 대통령을 좌지우지 하려는 총리로 분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드라마 `미생`의 주역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대명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재난 현장에 뛰어드는 재혁의 친구 `길섭` 역으로 열연했다. 재혁의 여자친구이자 발전소 홍보관 직원 `연주` 역에는 신예 김주현이 맡았다.

판도라는 전체 컷 중 CG 작업 분량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 특히 원자력이 생성되는 발전 과정부터 폭발 사고, 핵이 녹는 장면 등 시각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적은 장면들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인력과 기술적인 부분들을 필요로 했다. 이런 노력으로 영화 속 CG는 현실을 충실히 구현했고, 몰입을 방해하지 못했다.

다만 대통령을 맡은 김명민의 갑작스러운 변화, 김남길이 동료를 설득하는 부분은 영화의 옥에 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임명한 총리가 청와대를 장악할 만큼 무능하게 그려지다, 갑작스럽게 이상적인 대통령으로 선회하는 모습이 세밀하게 담기지 못했다. 또 피폭된 동료들을 설득하는 김남길의 대사도, 너무 짧은 시간에 상황을 바꿔버려 영화 집중에 방해를 받았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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