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 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한 자식이.

윤제림의 시에는 생의 페이소스가 짙게 깔린다. 주변의 삶을 향한 안타까움과 함께 하려는 고뇌가 깊은 울렁임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의 시에는 능청스러움이라할까 비극적이기도 한, 슬픔의 배경이 되는 비장함을 바탕으로 넌지시 일깨우는 시적 묘미가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늘 쉽게 다가오며 공감의 폭이 넓다. 그의 시는 일편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깊은 슬픔을 유발시킨다. 그의 시는 유년으로부터 자신이 체험한 삶의 리얼리티를 토대로 하고 있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친숙함과 함께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한때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며 개그콘서트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풍자하여 다문화시대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었던 코너가 있었다.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와 머무는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고 월급을 주지 않는 악덕 사업자들을 풍자한 것인데. 그저 우리는 웃음 반 머쓱함 반으로 얼버무리며 잠시 그 사정을 이해하다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러나 이 시를 보라. "저를 어쩌나 /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 손목 한 짝을 흘렸네"에서 유발된 슬픔은 우리 뜨거운 눈물을 길어내 정수리로부터 들이붓게 한다. 시인·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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