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생물학 거장 브랜튼 교수 60세 넘어 나노포어 분야 개척 저비용·초고속 유전자 분석 기여
`나노포어(Nanopore)`를 연구 중인 필자는 작년 이 분야의 전설적인 노과학자를 만나 `나노포어 시퀀서` 탄생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미국 하버드대 분자세포생물학과의 대니얼 브랜튼(Daniel Branton) 교수이다. 그는 1932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원예학과를 졸업한 후, 1960년 대초에 현재의 세포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생체막의 전자현미경 사진들을 찍은 장본인이며 세계 최고 생명과학저널 Cell 지의 편집장을 거친 대가이다. 그와의 만남에서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그가 남들이 은퇴할 나이인 60세가 넘어서 나노포어라는 새로운 융합분야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생체막을 연구하는 세포생물학 분야에서 이미 대가로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으나, 그 당시 생소했던 나노기술에 새롭게 도전한 결과 생체막을 모사하는 나노스케일의 인공 막을 제작하고 `나노포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특히 198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의 데이비드 디머(David Deamer) 교수가 대니얼 브랜튼 교수와 함께 구상한 아이디어를 노트에 그린 그림이 오늘날 나노포어 시퀀서의 탄생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그림을 보면 DNA를 이루는 서로 구조가 다른 염기들(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이 나노미터 수준의 단백질 통로를 통과할 때 얻어지는 이온의 전류 신호가 다를 것이라는 가설이 담겨 있다. 그 이후 `나노포어 시퀸싱`은 실패할 것이라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비판을 줄곧 받아왔으나, 17년이 지난 지금 결국 상용화가 되었고, 이젠 `MinION` 시퀀서가 우주정거장까지 보내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장비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의 DNA 가닥 전체를 한 번에 읽을 수 있고, 이번 가을학기 하버드대학의 실험코스에서 많은 신입생들에게 배포될 만큼 저렴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MinION을 이용한 저비용, 초고속 유전자 분석은 개인 맞춤형 의학 실현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동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는 포터블 감염병 진단에도 활용될 수 있음이 올해 발표된 바도 있다.
84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니얼 브랜튼 교수는 아직 현직에 남아 연구에 여념이 없다. 25년 전 한 노과학자의 새로운 융합으로의 작은 도전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커다란 혁신의 첫 걸음이 되었다. 또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과학자의 변신과 융합을 장려하고, 반복되는 실패와 안될 것이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수 있는 긴 안목의 투자와 사회적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가 고대하는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도, 세상을 바꾸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 바이오기술의 혁신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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