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라이온켐텍㈜를 창업할 당시 비슷한 시기에 나와 함께 창업했던 회사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과거의 어느 한 순간 라이온켐텍도 잘못된 나의 판단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이런 사실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새삼 소스라치곤 한다. 창업 이래 43년이라는 세월은, 돌이켜보면 뿌듯하지만 이 뿌듯함은 곧 중압감으로 환치된다. 5년 후 혹은 10년 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남보다 몇 발 먼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기업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기업 경영인인 내가 느끼는 중압감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국가나 지역사회 리더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울지 이해되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오천만 국민의 명운이 달린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 각종 경제관련 이권다툼은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전쟁`에 견줄 수 있고 당연히 리더의 역할이 전쟁에서의 승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였던 해운사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의 리더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다. 전 세계적인 해운업계의 장기불황과 경영실패로 적자가 누적되자 한진해운은 결국 지난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수출입물량이 1100조 원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해운업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여섯 번째 효자산업이었고 실제로, 동남아시아 해운비용이 전체 무역액의 7-8%, 미국과 유럽의 경우 10%를 차지하는 것만 보아도 해운시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상선에 비해 비교적 경쟁력이 있던 한진해운이 어느 날 갑자기 법정관리로 내몰렸다. 그러는 사이 덴마크의 세계 최고 해운회사 머스크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공백이 생긴 미주 노선을 장악해버렸고 해운비용은 30% 이상 치솟았다. 이때 이미 덴마크와 중국, 일본, 독일을 비롯한 세계 해운업계는 구조조정과 M&A 등 자구책 마련에 돌입한 상태였다. 결국 향후 우리 후세들이 자자손손 먹고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가 소리없이 좌초됐다. 지난 11월 1일, 정부는 뒤늦게 6조 5000억 원을 해운업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해운업의 좌초는 리더들의 판단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증명한 가슴 아픈 예로 남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참극을 지켜보며 몹시 안타까웠다. 누군가 나에게 해운사태에 왜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느냐고 묻는다면, 수출이 70%에 달하는 라이온켐텍의 구조상 해운사태의 여파를 피해갈 길이 없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이유가 됐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세대까지 먹고 살 길을 우리 세대의 실수로 망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 가까운 마음이 나를 몰아붙였다.

며칠 전, 대입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미래를 향해 정직하게 나아간다.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노력이 지금 더욱 절실한 이유다. 아직 늦지 않았다. 10년 후 1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이 2016년 대한민국에 살았던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 없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한 번 발 벗고 뛰자.

박희원 대전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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