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등 다양한 지식 활용 천연물 복합성분 적극 재조명 현대 의약계 발전·혁신 모색을

지승욱 한국생명공학硏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장
지승욱 한국생명공학硏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장
매년 이맘때가 되면 발표되는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세인들의 관심이 모인다. 특히 작년엔 중국에서 최초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 주목을 받았는데 중국전통의학연구원 투유유 교수가 말라리아 치료 성분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수상소감에서 "전통중의학이 아르테미시닌 발굴을 가능케 한 위대한 보고"임을 강조하며 전통중의학이 현대 의학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1600년 전에 쓰여진 `주후비급방`이란 중국 고대 의학서의 `개똥쑥(청호)을 물에 담그고 즙을 내 복용한다`라는 구절로부터 그녀는 `개똥쑥`의 치료 효능에 대한 단서를 찾았고 마침내 이로부터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전통천연물은 오랜 임상경험을 토대로 탁월한 유효성과 안전성으로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합성의약품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신약 후보물질이 될 수 있다.

현대의 일반적인 신약개발은 하나의 화합물로 하나의 표적을 선택적으로 공략하는 접근방법에 의존한다. 그러나 인체는 매우 복잡한 신호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질환은 복잡하고 다양한 병인에 기인한다. 따라서 하나의 표적만을 저해하는 치료제로는 치료 효능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부득이하게 예기치 못한 부작용과 독성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임상시험의 후반에 개발 중인 약물이 독성과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리스크가 크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등장한 것이 서로 상이한 화합물들을 이용하여 두 개 이상의 질환 표적을 동시에 공략함으로써 치료 효능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부작용은 낮추는 `복합치료(combination therapy)`이다.

약 3500여 년 전 중국 상나라의 재상 이윤(伊尹)이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로 `복합처방`은 한의학의 중요한 패러다임이 되었다. 한의학의 `복합처방`은 무작위로 약효가 있는 약재를 섞는 것이 아니고 `군신좌사(君臣佐使)`의 처방 원칙에 따르는데, 이는 옛날의 정치제도에 힌트를 얻어서 약을 처방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신좌사`에서 `군(君)`은 임금에 비유되는 주된 약효를 유도하는 약이며, `군`의 약효는 `신좌사`에 의해 상승된다. `신(臣)`은 신하에 비유되어 군약의 효능을 보조하여 강화시키고, `좌(佐)`는 돕는다는 의미로 군약의 독성을 완화시킨다. 또한 `사(使)`는 말단 신하인 졸개에 비유되며 처방의 작용부위를 질병 부위로 인도하고 여러 약들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사군자탕`에서는 인삼, 백출, 복령, 자감초가 각각 군, 신, 좌, 사의 역할을 담당하며 대부분 한약의 복합처방은 `군-신`, `군-좌`, `군-사`의 조합에 해당하는 구성을 포함한다. 최근 경희대 한의과대학 연구팀은 `육미지황탕`과 `구기자`를 함께 복합처방하면 기존 치매 치료제인 `도네페질(Donepezil)`의 부작용인 체중감소 없이도 알츠하이머형 치매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기에 고무적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한의학의 복합처방 원리를 현대 의학적으로 재해석한다면 `복합치료` 전략을 위한 조성물의 조합에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존 단일 표적 치료제의 부작용과 독성 문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에 중의학의 보고인 `주후비급방`이 있다면,우리나라엔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있다. 동의보감은 1610년 허준이 지은 조선을 대표하는 의학서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는데 이는 치료 효능이 경험적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전통천연물의 중요한 보고이다.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전통지식 유래의 천연물 복합성분이 인체에서 작용하는 원리를 시스템 차원에서 규명하고 천연물 신약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처럼 오래된 전통지식의 재조명을 통해 현대 신약개발의 난제를 푸는 혁신을 이루어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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