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쟁 연명의료 결정에 번지는 상황 가족 선택 비난 받을 이유없어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논쟁이 연명의료 결정에까지 번지는 뜻밖의 상황에 접하여 오래 전 공포를 다시 떠올린다. 중환자실에서 목격한 숱한 환자들의 죽음 앞에서 `이대로라면 나도 저런 마지막을 맞겠구나!` `특별한 운이 따르지 않으면 내 마지막에 가족의 고통조차 피하기 어렵겠다.`하던 공포. 나의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회복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에게 이루어지는 연명의료는 치료행위 보다 고문에 가깝게 느껴졌고,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지식과 상상을 총동원해 피할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문서를 작성해 공증을 받으면 어떨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두려워하는 주치의가 `차라리 타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에 사망하길 바랄지언정 연명의료 중단하거나 퇴원은 못 시키니 정 원하면 법원 결정을 받아 오라`고 버틸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들에게 확실히 내 의지를 표명해 두면 될까? 가족들이 내 뜻을 지켜주려다 `생명을 포기했다.`는 비난이나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편안한 마지막을 위해 가족들이 고통 받는 것보다야 그냥 고통 받는 죽음을 감수하는 게 옳겠지? 연명장치 중에 체외순환기처럼 무시무시하게 비싼 처치가 포함되어 가족들을 파산시킬 지도 모르는데? 중환자실 근무를 경험하고 나서 자신은 말기 상태가 되면 `의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서 조용히 죽기`를 바라게 되었다는 어느 의사처럼, 나도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죽는 행운` 밖에 기대할 곳이 없는 걸까? 정말 빠져나갈 길 없는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가족의 연명의료를 선택했던 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상황은 더 심각했다. 연명의료를 선택한 가족들 또한 삶을 파괴할 만큼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모친이 임종한지 수개월이 지난 후 만났음에도 모친에 대한 마지막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친이 연명의료를 받던 그 때 지옥을 경험했노라고, 중환자실 입실동의서에 서명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매일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의료진에게 보복하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고 했다. 그 가족이 설사 중환자실 입실시점에 다른 선택을 하고자 했더라도 그 때까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라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을 보면 그 때 상상했던 일들이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의 연명의료 결정 논란을 남의 일처럼 여길 수가 없다. 논란은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그간의 사회적 합의를 순식간에 무로 돌리는 것이다. 논란의 발생 그 자체가 의료진들이나 가족들 모두에게 부담이 따르는 연명의료 결정을 기피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

올해 초 제정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수년간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논의 등 사회적 합의를 거친 결과물이다. 이 법률에서 백남기 농민의 가족이 동의했다는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등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하여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아니하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으로, 여기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제16조에 따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자`이고, 16조에 따르면 `담당의사는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행하기 전에 해당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과 함께 판단하고 그 결과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록하여야 한다.`

아무래도 내게는 법률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주체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판단한 주체도 담당의사라고,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회생가능성`을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라 `임종과정에 있다`고 담당의사가 판단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결정이니 가족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김형숙 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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