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惡 대 惡, 먹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

어쩌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지옥일지도 모른다.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영화는 보통 `어디엔가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리게 마련이다.

그건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상력의 산물이자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조금 과장된 측면은 없지 않아 있을 테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섰다면, 그리고 탄탄한 구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만큼 관객을 설득하는 힘은 줄어들고야 만다. 지옥과 조선이라는 단어를 합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쓰이는 요즘, 지옥 같은 현실을 그린 영화도 많아졌다.

영화 `아수라`는 그런 현실을 검은색 톤으로 그려낸 영화다. 지옥이 어디엔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또 막상 보면 다소 과장됐다는 사실에 안도감 역시 함께 든다. 잔혹함에 얼굴은 찡그리고 있지만 마지막은 피식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어쩔 수 없이 `부패경찰`의 길로 들어선다. 그를 괴물로 만든 사람은 박성배(황정민) 시장이다. 악덕시장으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성배는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범죄도 불사할 정도의 `나쁜 놈`이다. 도경은 그의 수족으로 사는 대신 큰 돈을 만진다. 물론 그에게도 이유는 있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수술비를 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성배를 잡아들인다는 명목으로 수족인 도경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악독검사 김차인(곽도원) 탓이다.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과 함께 팀을 이뤄 도경을 협박하는 차인은 도경을 스파이로 삼아 성배의 비리를 캐려 한다.

도경에게 찾아 온 극도의 스트레스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친동생과 같은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성배의 수하로 선모를 들여보낸 이후 선모는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타락하는, 그리고 자신보다 성배의 신임을 받는 선모를 보며 도경은 충성과 배신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어딘가 익숙하다. 영화의 제목인 `아수라`는 불교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인 아수라도에 머무는 왕`을 뜻한다. `나쁜 놈들의 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함인 것 같기도, 혹은 아수라도와 아수라장의 중의적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지옥과 관련된 불교 용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같은 느와르 장르의 중국 영화인 `무간도`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는 곳곳에서 많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뛰어난 캐스팅과 연출, 연기,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가 완벽히 융화되지 못해 제각각 생으로 소화되고야 마는 탓이다. 요리를 만드는 재료는 모두 뛰어났지만, 화학적 결합이 아닌 단순한 물리적 결합과도 같아 예상되는 맛을 전혀 내지 못한 경우다.

가장 아쉬운 점은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던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또 설득력이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극도로 단순화하면 영화는 그저 `성배나 차인의 의심과 채근-도경의 고뇌`를 반복해서 그리고 있다. 특히 도경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조차 설득력이 떨어져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든다.

이는 이야기의 얼개가 치밀하게 엮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비주얼로 달리는 초반 5분이 지나고도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실하기만 하다. 모두가 이유 한 가지쯤은 나름 갖고 있지만, 그마저도 내용이 빈약해 `원래 나쁜 놈이기에 나쁘다`라고 인식될 뿐이다. 극강의 조합을 보이는 배우들은 영화의 큰 흥밋거리임에도 이마저도 기존에 본 캐릭터인 것 같아 어딘가 식상하다. 다행인 점은 워낙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인 만큼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는 점이다.

물론 어두운 색으로 뒤덮인 각 장면의 시퀀스는 압도적이다. 카메라 워크와 색감, 어디엔가 있을 지 모르는 독특한 장소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이 뛰어났던 만큼 이야기까지 받쳐줬다면 한국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의 새 이정표를 세웠을 지 모를 일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아수라`를 그려냈다. 개봉첫날 예매만 40여 명이 넘었을 정도로 흥행도 순항 중이다. 다만 이것이 진짜 아수라의 세계를 그린 것인지, 아니면 영화 자체가 아수라장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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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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