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즉 확률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수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류는 기원전부터 확률적 상황을 겪어왔다. 신의 계시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신탁을 받았고, 고대 동양에서도 주술적인 종교의식에서 신의 판단을 받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거나 항아리에서 어떤 계시를 받는 행위는 그때에도 있어왔다. 이러한 행위 자체는 어떤 확률적 사고에 기초한 행위로 해석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확률적 행위의 결과가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확률에 대한 연구는 신의 뜻을 분석 내지 해석하는 것으로 보여졌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신을 모독하는 것에 해당하여 모두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이유로 확률은 다른 수학 영역에 비해 상당히 늦게 수학의 역사에 등장하였다.

17세기에 수학의 한 분야로 등장하기 시작한 확률은 운으로 하는 게임(a game of chance)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도박을 즐겼던 16세기의 수학자 카르다노는 `게임의 가능성에 대한 책`을 내놓으면서 확률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으나 그는 연구 결과를 오랫동안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률연구의 최초의 자리를 파스칼과 페르마에게 내주게 되었다. 파스칼과 페르마는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도박사였던 슈발리에 드 메레가 제안한 도박 내지 공정한 분배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확률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렇듯 확률은 도박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드 메레는 자신의 수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도박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다음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이 곤란하게 되었다. 결국 1654년 드 메레는 친구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드 메레의 첫 번째 문제는 1개의 주사위를 4번 던졌을 때 6이 적어도 한 번 나오는 것에 내기를 걸면 유리한데, 2개의 주사위를 24번 던졌을 때 (6, 6)이 적어도 한 번 나오는 것에 내기를 거는 것은 왜 불리한가 하는 문제였다. 드 메레는 6가지 경우가 있는 주사위 1개를 4번 던지는 것과 36가지 경우가 있는 주사위 2개를 던지는 것은 6 : 4 = 36 : 24로 비가 같기 때문에, 이를 경우의 수로 하는 확률은 같아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2개의 주사위를 24번 던져서 (6, 6)이 적어도 한 번 나오는 경우에 돈을 걸어 손해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드 메레는 그 이유를 궁금해했고 파스칼에게 문의한 것이었다.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확률을 계산하였다.

1개의 주사위를 4번 던져서 6이 적어도 한 번 나올 확률은 전체 사건의 확률 1에서 1개의 주사위를 4번 던져서 6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을 확률 을 제외한 1- =0.518이 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계산하면, 2개의 주사위를 24번 던져서 (6, 6)이 적어도 한 번 나올 확률은 1- ≒0.491이므로, 근소한 차이지만 전자의 확률이 높다. 2개의 주사위를 n번 던져서 (6, 6)이 적어도 한 번 나올 확률은

p=1- 이고, 1- ≒0.506이므로 확률이 보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25번 던져야 한다.

드 메레의 두 번째 문제는 `점수 문제`(problem of points)로 불린다. 게임에서 동일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같은 액수의 판돈을 걸고 게임을 하여 특정한 점수를 얻는 사람이 판돈을 모두 갖기로 했다. 그런데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여 게임을 중단했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누어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5점으로 승패를 가리는데 두 사람의 점수가 4점, 3점인 상태에서 게임을 중단했다고 할 때, 파치올리는 두 사람의 점수인 4 : 3으로 판돈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파스칼의 답은 판돈을 3 : 1로 분배하는 것이었다. 파스칼과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페르마도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이러한 결론을 내렸는지 다음 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금동인 수학전문학원 엠투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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