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하게 뉴스에서 이웃에서 자살의 소식을 듣는다. 누군가 홀연히 삶을 중단한 사실을 접하면, 폭풍도 없이 스스로 뽑혀진 나무가 그려진다. 자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생물학에서는 사람을 개체라 한다. 개체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로 구성된 유기체이다. 세포는 유기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기심을 억제해야 한다. 한 세포가 전체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무질서하게 증식하면 암세포가 된다. 암세포가 되기 전 스스로 세포가 소멸되는 것을 아포토시스, 세포자살이라 한다. 세포에서의 자살은 마치 사람이 늙어 자연사하여 한줌의 흙의 돌아가듯,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세포자살의 반대가 세포괴사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의해 세포의 팽창과 파열로 주위를 파괴하고 심한 염증을 발생시킨다. 자연적인 죽음이 아닌 질병이다. 우리 몸의 세포단위에서 자살이 미덕이라면, 인간 사회에서 자살은 세포의 괴사처럼 주위에 상처를 남긴다.

자살은 자연스러운 생명과정을 스스로 중단하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의 인생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멈추고 싶은 판단에서라면, 인생이 더 좋아 질 기회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비극이 된다.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 이다. 사회와 공동체의 의무이다.

피상적인 삶이 몸에 밴 현대인들은 표면적인 기쁨을 대량생산해 내고 구매하는 사회에서 산다. 진정한 기쁨이 보다 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강제적인 자기 긍정과 지나치게 광신적인 자기 포기는 모두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용기처럼 보이지만, 파괴적 용기이며 상상력의 상실이라고 문화철학자 폴 틸리히는 `존재의 용기`에서 강조한다. 이 책은 20세기 중엽 허무주의가 팽배했던 미국에서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자신을 포기하려는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권했던 처방전이었다.

분노와 절망과 죽음의 유혹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이다. 용기는 용납할 수 없어 멀리했던 자신과 타인을 다시 포옹하는 재결합이다.

결국 일생에 딱 한번 만나, 영원히 침묵하게 될 죽음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일시적이다. 일시적인 문제를 영원한 해답으로 끝을 내려는 자살은 공평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자살은 존재의 깊은 바다에 뛰어내리는 용기로 멈출 수 있다. (사)백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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