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갤럭시노트7의 세계적인 수준은 한국이 역사적으로 정보전달기술에서 총명한 유전자가 있음을 말해준다. 18세기 이후 세계가 유럽의 주도였다면, 중세까지는 지성과 기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종이와 인쇄술이었다.

특히 송나라(960-1279) 때 그 절정을 이뤄 12세기에 7000만 명이었던 중국의 인구는 한 세기 뒤에 1억 명으로 늘어 유럽 전 인구의 두 배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 중국보다 한국이 활판인쇄가 먼저 개발된 것을 세계 역사학자들이 인정한다. 특히 1403년 태종 때 청동 활자가 만들어지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선포와 10만개의 활자가 주조되고 10여 가지의 서체가 개발되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보다 앞섰다.

유럽에서의 금속활자는 지식의 전파와 유통에 일대 혁명을 일으켜 서양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역할로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고려와 그 활자를 보편적으로 사용한 조선이 이 땅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을까?

"구텐베르크보다 몇 년 앞섰음을 강조하는 것은 열등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명관 교수는 `조선시대의 책과 역사`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민간에서 제작되어 그 기술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던 데 반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의 소유물이었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대량의 인쇄물을 얻는데 의의가 있었다면 국가가 인쇄, 출판을 독점하는 조선에서는 문화적 사회적 변혁을 이루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지식의 전면적인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로지 사대부를 위한 것에 그쳤다. 권력과 지식의 독점이 늘 조선을 해치고 있었다.

조선은 서적수요자도 많지 않아 일부 관료가 서적의 서점을 만들고자 했지만 끝내 서점이 출현하지 못했다. 중국은 송대에 이미 민간의 출판사와 서점이 존재했으며,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 민간에서 출판사와 서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가적 인쇄기술을 갖춘 나라가 거의 없었던 역사에 비추어, 민중 전체에 퍼지지 못한 우리의 아쉬움은 크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을 거부하는 자들은 많다. 21세기에도 사대부를 사모하는 기득권층의 국가중심주의는 민간의 총명함이 결국 빛을 잃게 한다. (사)백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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