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안병진 지음·메디치미디어·272쪽·1만3800원

1776년 7월 4일은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날로 기억되고 있다. 바로 미국이 독립선언을 채택한 것. 이후 200여 년 미국은 세계를 좌우하는 패권국가로서 발돋움하며, 현재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철옹성` 같던 미국에선 작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외부 요인에 따른 변화라 하기보다는, 내면에서부터 `기존의 틀`을 깨려는 시도가 느껴지고 있다. `A는 B다`는 식의 정언 명법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변화의 기류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이에 따른 적잖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내면의 작은 변화를 어떻게든 정의해야 한다면 현재 미국의 상황은 `정치의 혼돈`이란 표현으로 귀결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미국의 정치평론가마저 한치 앞을 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모습을 건국 아니 독립 선언 후 현재까지의 리더십이 석양과 같이 지고, 새로운 리더십이 떠오르는 상황으로 분석한 책이 나왔다. 바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 겸 부총장이 쓴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이다.

저자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대선에 천착해 얘기를 풀어간다. "이번 미국 대선은 이념과 정당, 그리고 정책의 대결로 이해해선 안 된다. 문명사적 대전환과 충돌이란 프리즘으로 새롭게 봐야 한다. 이번 대선은 힐러리 대 트럼프의 대결이 아니라 미국 건국 초기의 근대적인 문명의 틀과 주도세력이 모두 바뀌는 대전환기이다." 이 말은 저자가 책을 통해 어떤 얘기를 풀어낼지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표현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앞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화당, 민주당 후보의 개별 정책이나 선거 퍼포먼스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그의 시각에 따르면 샌더스, 트럼프의 등장은 그리 급작스럽게 볼 일도 아니다. 기적과도 같았던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오바마 이전 시대의 추이를 살펴보면 그 징후가 충분히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미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즉 독립선언 이후 리더십의 몰락과 새로운 리더십의 부상이 이미 예고됐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트럼프는 황혼기에 접어든 미국 보수주의 세력의 민낯이다. 겉으론 점잖은 체하지만 공화당의 다수가 반(反)이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반면 힐러리는 오바마에 이어 생태적 기업국가를 지향한다. 페이스북, 구글 등의 자본과 기술, 자유와 공존·공영이란 리버럴한 정신이 결합된 기업을 말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건국 이후 미국 사회의 주류를 구성하던 백인 중심의 제조업 문명에서 새천년 세대와 히스패닉, 흑인 중심으로 미국의 `추`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새천년세대와 히스패닉, 흑인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주류 세력은 풀뿌리 운동과 특유의 진보성을 결합해 혁명의 진원지가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혁명 이후 과거로의 회귀 열풍이 불듯 포스트 오바마 시대, 샌더스와 트럼프는 복고주의 운동의 일환이다. 그렇기에 안 부총장의 책은 미국 문명이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적응하며 전 세계적 리더십을 유지할지를 전망하고 있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대중에 친숙한 영웅 모델로 현재 미국 정치인을 분류한 점이다. 저자는 윤리와 힘(권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영웅인 다크나이트 유형으로는 오바마, 힐러리를 꼽았다. 또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매케인은 신에 가까운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복고적 영웅인 아킬레우스와 닮았다고 평가했다. 어마어마한 재력을 갖추고 기업국가를 추구하는 현실판 아이언맨은 트럼프 공화당 후보나 머스크 테슬라 회장에 해당되는 영웅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책의 백미는 미국 권력구도의 거대한 물줄기를 정리하면서도 재치있는 비유로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더했다는 점이다. 성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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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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