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1930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코끼리사냥과 상아거래가 한창이었을 때 시베리아 이르크초근에서도 매머드 사냥과 상아 거래가 한창이었다. 케냐에서는 살아있는 코끼리 사냥이 한창이었고 이리크초근에서는죽어서 냉동이 되어 있는 상아의 채굴이 한창이었다.

매머드는 몇십만 년 전쯤에 시베리아에서 살다가 백만 년쯤 전에 멸종한 코끼리의 친척들이었으나 18세기 초에 그 몸이 냉동상태로 발견되어 19세기부터 수많은 사냥꾼들이 발굴에 나서고 있다.

사냥꾼들이 발굴에 나선 이유는 상아 때문이었으며 세계의 상아 시장에는 아프리카의 코끼리 상아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매머드 상아도 거래되었다. 매머드의 상아는 오래도록 냉동되어 있었으나 그 가치에 큰 손상이 없었다. 그것은 각종 장식품으로 가공되었고 특히 고급 당구공으로 만들어졌다. 상아로 만들어진 고급 당구공은 대용품이 없었다. 상아로 만들어진 당구공은 미묘한 탄력이 있었다.

시베리아의 얼음 속에서 채굴된 매머드의 상아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보다 다소 질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큰 가치가 있었다. 크림색의 색깔도 같았고 아름다운 무늬도 같았다. 더구나 매머드의 상아는 코끼리의 그것보다 훨씬 컸다. 매머드의 상아는 안쪽으로 크게 휘어져 있었는데 그 길이가 5m나 되는 것도 있었다. 아프리카 코끼리 상아의 두 배나 되는 거대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매머드 채굴 사냥꾼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30년 5월에도 시베리아에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매머드사냥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그곳에 몰려드는 매머드사냥꾼들은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렇다할 숙박시설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천막을 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영국의 학자가 한 사람있었다. 파슨 교수는 코끼리 종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소장학자였는데 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탐험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매머드 사냥꾼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매머드 채굴을 하고 있었다.

파슨 교수는 물론 그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냉동 매머드가 있는 곳은 툰트라(영구냉동지역)이며 기온이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는 얼음의 나라였다.

그곳의 얼음은 녹지 않는다. 몇천 년 몇만 년이 되어도 돌덩이 같이 얼어붙어 있었으며 매머드는 그런 얼음벽 안에 갇혀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었으며 어느 지역에서는 얼음벽 속에 사람의 시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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