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날 것이며(…)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 다시 치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1988년 백담사로 유배형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사죄를 통할 것으로 알았지만 분노와 질책이 높아갔기에 이 자리에 섰고(…) 1980년 광주의 비극적인 사태는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두 대통령의 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제3의 위치에 스스로 바라보듯, 자신이 관련됐던 일을 남의 일처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세간에선 이런 태도를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부른다.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는 이승만 대통령이었지만, 이 분야의 대가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화됐다. 처음에는 남 탓을 하는 화법으로 시작했지만 국정 난맥상이 노출될 때마다 남 탓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유체이탈`의 단계로 발전했다. 이제는 대통령의 화법이 여기저기서 본받아 따라할 정도로 전염력이 강해졌다.

최근 대전봉산초 부실 급식, 대전예지중·고 학사 파행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설동호 대전시교육감도 유체이탈 화법에 감염된 모양새다. 설 교육감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에서 전국적인 이슈 몰이를 한 봉산초 급식 사태와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대전예지중·고 문제에 대해 `사과`보다는 `구성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급식 사태가 1년여간 방치된 이유도 `보고를 늦게 받은 탓`이라고 했다. 학교에 `자율경영, 책임 경영`을 할 재량권을 줬는데도 문제가 불거진 것은 `70-90년대 과거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예지중·고 전 이사장과의 유착설에 대해서는 "일면식이 없다고 말한 적이 없다. (전교조가)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유착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듣기에 따라선 내 잘못은 없고, 남 잘못만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흠결을 인정하는 사람과 순결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훌륭한지는 분명하다. 원세연 취재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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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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