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유체이탈 화법

2016-07-14기사 편집 2016-07-14 05: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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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날 것이며(…)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 다시 치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1988년 백담사로 유배형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사죄를 통할 것으로 알았지만 분노와 질책이 높아갔기에 이 자리에 섰고(…) 1980년 광주의 비극적인 사태는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두 대통령의 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제3의 위치에 스스로 바라보듯, 자신이 관련됐던 일을 남의 일처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세간에선 이런 태도를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부른다.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는 이승만 대통령이었지만, 이 분야의 대가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화됐다. 처음에는 남 탓을 하는 화법으로 시작했지만 국정 난맥상이 노출될 때마다 남 탓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유체이탈'의 단계로 발전했다. 이제는 대통령의 화법이 여기저기서 본받아 따라할 정도로 전염력이 강해졌다.

최근 대전봉산초 부실 급식, 대전예지중·고 학사 파행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설동호 대전시교육감도 유체이탈 화법에 감염된 모양새다. 설 교육감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에서 전국적인 이슈 몰이를 한 봉산초 급식 사태와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대전예지중·고 문제에 대해 '사과'보다는 '구성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급식 사태가 1년여간 방치된 이유도 '보고를 늦게 받은 탓'이라고 했다. 학교에 '자율경영, 책임 경영'을 할 재량권을 줬는데도 문제가 불거진 것은 '70-90년대 과거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예지중·고 전 이사장과의 유착설에 대해서는 "일면식이 없다고 말한 적이 없다. (전교조가)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유착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듣기에 따라선 내 잘못은 없고, 남 잘못만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흠결을 인정하는 사람과 순결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훌륭한지는 분명하다. 원세연 취재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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