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따르면 융통성 없다 생각 안전 시스템 있어도 습관적 외면 스스로 책임감 느끼며 기본 지켜야

며칠 전 지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서울의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사고는 지난 5월 28일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던 서울 메트로의 외주 업체 직원인 김 모(당시 19세) 씨가 열차에 치어 사망한 사고인데, 안전 수칙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사망자는 사고 당시 홀로 작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초기 서울 메트로와 외주 업체 측에서는 직원인 김 모 씨가 안전 수칙을 어기고 작업한 때문이라며 개인의 과실에 의한 사고로 몰아갔으나, 이후 이 사건이 근본적으로 열악한 작업 환경과 관리 소홀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 구의역 승강장에는 사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국화꽃이 놓여지는 등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으며, 서울메트로의 임원과 간부들이 사표를 제출하였고, 스크린도어 업무 관련 책임자들과 사고 당시 구의역 담당직원 등 총이 직위 해제되었으며, 서울메트로를 관할하고 있는 서울시의 총책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무조건 책임을 지고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다.

저녁식사 자리에 합석한 한 지인은 많은 시민들이 사망자를 추모하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이 사고가 사망자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에 그리하여 나의 자식들도 현재의 사회시스템에서는 학교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하여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하여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면 언제든 운이 나쁘면 이러한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해 이 사고를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다른 지인들은 매뉴얼의 문제도 지적하였는데 "매뉴얼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냐? 선진국의 매뉴얼을 베껴놓은 것으로 실정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고, 매뉴얼이 있어도 이는 구색용이며 지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조직의 책임자들이나 상급자들은 성과만을 강조하며 안전 등의 문제는 소홀히 한다. 사고가 터지면 단지 운이 나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고속전철 기술을 전수한 프랑스의 경우 전동열차 한 량을 점검하는데 필요한 매뉴얼이 우리의 열배 가량이며 그것을 철저히 지킨다.", "건설공사현장에서 선진국의 근로자 경우 매뉴얼대로 하기 위한 공구가 없으면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 거부한다."고 했다.

과거의 충남 금산의 불산 누출사고나 세월호 침몰사고 등도 이번 사고처럼 매뉴얼이 있어도 매뉴얼대로 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나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는데, 이에는 `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불굴의 정신 및 신속과 효율성의 중시가 그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매뉴얼을 곧이곧대로 따르려는 태도가 낯설고 융통성이 없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의 누적된 안전무시 관행과 과학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이며, 사고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것인데 내가 담당자일 때만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폭탄돌리기`가 만연해 있다.

위의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는 시민들이 사회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제 우리 사회의 운영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점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무조건 되게 하라는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사회, 정상적인 경로로는 될 수 없는 것을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라도 되게 만드는 것이 능력의 척도가 되는 비정상적 사회를 탈피하여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사회`, `될 수 있는 것과 될 수 없는 것이 명확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흐름인 것이다. 앞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이윤보다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 먼저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둘째, 이를 위해 실정에 맞는 법과 매뉴얼이 마련되고 셋째, 법과 매뉴얼을 무시하라는 상사 등의 명령을 거부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고 법과 매뉴얼을 무시하라는 상사 등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곽영길 충남도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정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