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박찬욱 감독 아가씨

본디 사람이란 간사한 동물이다. 개인의 욕망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 여긴다. 물론 원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를 속이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누군가를 속이는 것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내가 속이려 하는 것처럼 그도 나를 속이려 한다. 마음을 얻는 것은 속이는 일보다도 더 어렵다. 결국 해답은 꾸밈 없는 마음에 있다.

영화 아가씨는 저마다의 욕망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7년만에 선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인 만큼 주목도는 엄청난 수준이다. 개봉 첫날인 1일에만 29만 명이 스크린을 찾아 아가씨를 알현했다. 이번 영화 역시 감독의 대표작인 올드보이(2003)와 박쥐(2009)에 이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았다. 관객들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진 상황이다. 전작들과 달리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으진 못했지만, 아가씨는 "역시 박찬욱"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영화는 아가씨(김민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아가씨는 후견인인 이모부(조진웅)의 보호 아래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만큼, 이들은 정문에서 차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 겨우 건물이 보일 정도의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아가씨에게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나이 든 이모부와 정혼한 탓에 즐겁게 살아갈 낙도 없다. 하는 일이라고는 이모부의 엄한 감시 아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뿐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새 하녀로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숙희(김태리)라는 아이가 들어온다. 아가씨에게 숙희는 하녀, 벗, 혹은 정인(情人)이다. 이들은 그렇게 점점 가까워진다.

허나 숙희는 아가씨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저택에 들어온 아이였다. 대도둑인 어머니의 영향 탓인지 빛나는 것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 그는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쁜 인형과도 같은 아가씨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아가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들은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름답다. 감독 특유의 미장센은 이번 작품에서 더욱 돋보인다.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색감은 그중에서도 발군이다. 극중 백작이 아가씨에게 가르치는 서양화처럼, 영화의 모든 장면에 수채화보다 묵직한 유화의 느낌이 담겨 있다.

카메라워크 역시 훌륭하다. 시야에 보이는 공간이 대체로 넓어 대저택의 공허함과 아름다움이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갇힌 공간에서 이야기가 주로 전개되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은 이유다. 특히 화면 정 중앙에 인물을 자주 배치해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구성이 눈에 띈다. 적어도 비주얼적으로는 어느 한국 영화보다도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의 흥미로운 서사가 농도 짙은 성적 묘사에 가려질 우려도 있다는 점이다. 동성애 코드가 전면에 부각된 작품인 만큼 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구조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사라 워터스의 원작 `핑거스미스`를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거장은 이를 본인만의 색깔로 잘 풀어나간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하면서도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통쾌하다. 결국 욕망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아가씨도, 하녀도, 백작도, 이모부도, 결국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뒤틀린 욕망은 배신과 음모를 낳는다. 음모를 풀어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욕망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마음이다. 꾸밈없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아가씨가 그랬듯, 혹은 하녀가 그랬듯.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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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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