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스티브 맥퀸 감독 헝거

시대를 살다 간 젊은이가 있다. 자신의 신념으로 시대를 바꾸려 한 청년이다. 세상의 변화에는 힘이 필요하다. 저항을 성공적으로 이끌 `무기` 역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년이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 그리고 굳은 신념뿐이다. 세상은 그와 그의 동료들의 행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변화라는 것에 미온적이다. 결단이 필요한 때였다.

영화 `헝거`는 아일랜드의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 2008년에 개봉한 영화는 개봉 이후 문제적 작품으로 등극하며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실 영화는 젊은 나이임에도 현재 거장 반열에 오른 스티브 매퀸 감독, 연기파 배우로 칭송받는 마이클 패스밴더의 감독·주연 데뷔작이다. 그러나 `초짜`에 불과한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시너지는 실로 놀랍다.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청년, 아일랜드 저항군의 주요인물인 `바비 샌즈(마이클 패스밴더)`의 마지막 순간을 담았다. 바비는 영국으로부터의 완전독립을 위해 투쟁을 지속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의 핵심인물이다.

바비를 비롯한 동지들은 악명높은 영국의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대규모 소요사태가 지속되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이들의 정치범 지위를 박탈하기에 이른다. 수감된 저항군들은 자신들의 정치범 지위 복권과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교도소를 더럽히는 오물투쟁, 죄수복을 입지 않고 맨몸으로 생활하는 모포투쟁, 씻지 않는 안씻기 투쟁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들만의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영국은 이들의 행동에 관심이 없다. 대화의 장벽은 오히려 더욱 높아지기만 한다. 대처 수상과 반 공화주의자들은 이들의 행동을 매도한다. 영국은 이들의 투쟁에 폭력으로 대답했다. 수용소 안의 인권이란 사라진 지 오래다. 폭력을 앞세워 오물을 치우고 억지로 씻기고 새 옷을 입히려 한다. 저항은 꾸준하지만 효과는 없다. 바비는 방법을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죽음을 불사한 장기간의 단식에 돌입하는 것이었고 결국 바비 샌즈는 66일만에 숨졌다.

영화는 극단적으로 대사가 적다. 대사가 적은 만큼 고요하다. 고요함은 불안을 자아낸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침묵이다. 감독은 영화에 음악 사용을 극도로 꺼린 모습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음향효과에 집중하게 된다. 벽에 오물을 바르거나 조직원들이 교도관들로부터 폭력을 당할 때의 울부짖음, 오물을 치울 때 나는 물소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관객은 불안한 수용소 내부의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가진 몸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의 여부다. 영화는 IRA 조직원들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의 저항을 그린다. 어떤 무기도 필요치 않은 가장 원초적인 저항이다. 원초적 저항은 필연적으로 몸에 생채기를 남긴다. 수용소 내부의 폭력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생긴 흔적이다. 그러나 몸은 도구일 뿐이다. 맨몸으로 저항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워도 눈빛만은 형형하다. 자유, 그것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만든 원초적인 방법이다.

영화의 백미는 바비와 도미니크 신부(리암 커닝햄)의 대화장면을 담은 16분의 롱테이크 신이다. 두 사람은 정세에 대해 같은 판단을 하고 있으나 추구하는 방향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다르다. 이 지점이 바비의 단식투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다. 제작진의 영리한 촬영을 통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신념`이라는 주제가 전달되고, 이 때문에 관객들은 연민이 아닌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바비의 투쟁을 수긍하게 된다.

오늘날 바비가 추구한 투쟁의 열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당시 대처 총리는 IRA 조직원들의 투쟁을 `자기 파괴`라고 표현했지만,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신념을 관철시키려 노력했을 뿐이다. 하지만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론은 서서히 변질되고 있다. 세상 역시 변화에 미온적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행동하지 않는다. 신념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 젊은이는 결국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행동으로 옮길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겠어요."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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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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