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이 없어도 마음을 나누는 삶 주변 사람들 문제 고민·해결 참여 성의 있는 인간관계가 이상적 사회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
최근에 최인훈의 장편소설 회색인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작품 안에 쉽지 않은 단어가 하나 있다. 데가주망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주인공 독고준이 비망록에 적어놓은 말 가운데 이 말이 나온다. `모든 앙가주망이 모든 데가주망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앙가주망이라 하면 흔히 `사회 참여`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데가주망은 그 상대어일텐데. 하지만 뜻이 명확하지만은 않다. 찾아 보는 수밖에 없다. 사전류에 이렇게만 나와 있다. `장래의 새롭고 자유로운 계획을 세워 나갈 때, 이전에 있었던 자기 구속에서 자기를 해방하려는 경향.`

앙가주망이라는 말은 사회 참여 이전에 `구속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면 데가주망은 구속됨을 넘어 현실의 자장 너머로 이탈해 감을 뜻하는 것일까. 뜻이 조금 좁혀진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 어떻게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르트트의 책 `존재와 무`를 펴드는 것, 다른 하나는 가까운 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다행히 중앙대에 사르트르를 전공한 불문학 교수가 계시다.

책은 사고, 한편으로는 그 선생님께 연락도 드려보는데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드렸던 것이다. 연락처를 새로 알아내어 전화를 드리고 아무 날 아무 시에 만나기로 했다.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할 때 책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좋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그것을 잘 아는 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한번에 문제의 윤곽까지, 관련된 다른 것까지 깨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안에서 대강의 뜻을 알아낸 후 드디어 그분을 만나는 날이 왔다. 며칠 전 저녁이다. 웬 종이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나셨다. 무슨 짐을 들고 퇴근하시는 길이신가 했다. 헌데, 아니다. 종이가방 안에는 책이 세 권, 복사물이 한 권 들어 있고, 그게 전부 질문을 드린 필자를 위한 것이었다.

저녁식사를 겸한 자리에 앉아 그분과 사르트르며, 앙가주망이며, 데가주망이며, 또 사르트르가 쓴 소설 구토의 의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당신의 스승인 정명환 선생이 쓰신 책 중에 데가주망이라는 말 말고 데상가주망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하시니, 필자는 그 데상가주망을 함석헌과 이어령의 대담 속에서 본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데가주망이나 데상가주망이나 모두 앙가주망의 반대의 뜻이 있고, 사르트르는 이 말을 자기 저술의 전개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 달리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국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한창이던 때는 1950년대, 1960년대였다. 그 무렵 사르트르가 제시한 지식인의 사회 참여, 즉 앙가주망이 지식인들 사이에 중대한 주제로 입에 오르내렸다. 최인훈의 회색인을 쓴 게 그 무렵, 1963년부터 1964년 사이였다.

이제 어느 정도 분명해진 것을 말해 보면, 최인훈은 다른 이들이 당면한 사회 문제를 놓고 참여를 고민할 때, 당대의 담론적 지형을 뛰어넘어 더욱 이상적인 사회체제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간관을 구축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데가주망이었다. 하지만 이 글의 요점은 그게 아니다. 누가 무엇에 대해 물었을 때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세 권을 찾아들고 또 필요한 부분을 복사까지 하려 할 수 있었을까? 그날 실로 오랜만에 한 성의 있는 인간을 만난 듯한 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분은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게 아무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을 내시고 또 당신의 책까지 후배를 위해 물려주신 것이었다.

`맹자`에, 양나라(=위) 혜왕이 이로움을 말하니, 맹자가 왕을 나무라는 대목이 나온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쩌면 양혜왕들의 시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런 때 어진 성정으로 인과 의를 찾음은 정녕 어리석기만 한 것일까? 최인훈이 쓴 `회색인` 소설 속에서 독고준이 찾는 이상향은 사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 회색인이 필자에게 선사한 망외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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