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경연일기 난세에 읽는 정치학율곡 이이 지음·오항녕 옮김·너머북스·655쪽·2만9000원

혼돈의 시대다. 정치는 기능을 상실했고, 불통 일변도의 소통은 계속됐다. 민생은 실종됐고, 정당·정파간 싸움만 기승을 부린다. 작금의 현실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돼 온 사회의 폐단이다. 왕정시대인 조선에도, 민주시대인 현재에도 이 병폐는 본질을 유지한 채 각기 다른 형태로 표출돼 왔다. 이 과정에서 배고프고 아픔을 겪는 이는 민초다. 고난을 벗어날 해법 찾기에 골몰하지만 결과는 무소득이다. 현재란 이름의 `동굴` 속에선 문제 해결의 본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생 실종의 늪에서 벗어날 해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바로 역사다. 과거는 항상 오늘을 보는 거울이었다. 이는 정치가 사망선고를 받은 지금도 불변의 진리다. 이기일원론 (理氣一元論)으로 조선 성리학의 지평을 연 율곡의 경연일기라면 현재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정치·민생의 위기를 극복할 다양한 방안이 사례별로 담겨 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고증으로 보다 현실적이고 시의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항녕 교수가 옮긴 율곡의 경연일기에 난세에 읽는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율곡의 경연일기는 율곡이 30세 때인 1565년 (명종 20) 7월에 시작해 46세 때인 1581년 (선조 14) 11월에 까지 경연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자 또는 신하로서 율곡의 직언과, 선조의 침묵에 담긴 조선 정치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국왕과 신하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인 경연을 통해 율곡은 소통·화합·민생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져준다. 실제 율곡의 경연일기는 경전 공부보다는 국가 정책, 인재 등용 시사에 따른 정치적 판단 등 정치활동의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왜 율곡이 조선 최고 학자이자 정치가인지를 여지 없지 보여준다. "지금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때가 따로 있습니까", "인재가 없는 시대가 있습니까", "구습을 고집하고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 일이 있습니까", "동과 서로 편을 나누는 것이 나랏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등의 직언을 통해 좋은 지도자의 덕목과 민생정치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항녕 교수는 율곡의 경연일기를 옮기며 이 책의 관전 포인트로 상하의 관계와 권력을 통한 사회 경영을 제시한다. 율곡이 강조한 임금과 신하의 소통과 교류, `요순`이란 성인 모델을 통해 현실 정치권력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적 위계를 보편적 가치를 지닌 대칭성으로 바꾸고 이를 경세론의 구체성 속에서 실현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책을 통해 율곡이 제시한 경세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군주는 다 가졌으므로 가지면 안 된다"로 요약된 것. 율곡은 급한 민생의 고통을 풀어야 향약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거두도록 했음은 물론, 공납제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세제 전반에 대한 `수술`도 추진했다. 이 같은 율곡의 노력은 지방제도 개혁 논의, 군역의 폐해에 따른 군적 정리 문제 등 국가 운영 전반에 대한 타당성 검토와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종의 지향점이 될 수 있다.

율곡의 시대는 `평행이론` 처럼 현재 우리시대와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 인지 그의 말은 과거의 화석화된 언어로 읽히지 않는다. 불화, 불통으로 어지러운 지금, 율곡의 경연일기가 해법을 찾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성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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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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