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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쇠수저 이야기

2016-01-06 기사
편집 2016-01-06 04:49:20
 한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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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흙수저' 계층 구별 배경보다 생각·행동이 중요 변화 노력없이 얻는것 없어

언제부터인가 금수저 또는 흙수저가 사람의 경제적 또는 사회적 배경을 대변하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표현들은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취업현실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씁쓸한 생각이 들게 하지만 너무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기도 하다. 수저는 동양의 식탁에서 주로 사용되는 도구로서, 국물음식을 먹는 데 사용되는 숟가락과 반찬을 먹을 때 사용하는 젓가락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숟가락의 사용은 청동기 시대 이후 농경문화의 발전에 따라 곡물이 주식으로 등장하면서 발달되었다고 한다. 출토된 유물로 보아 숟가락과 젓가락의 역사는 중국에서는 대략 각각 5000년과 3000년 우리나라에서는 각각 3000년과 20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15세기에 포크가 발명되었고 18세기 이후 대중화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이전에는 손가락을 사용하여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은 식탁에서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므로 우리나라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수저문화를 가진 유일한 나라로 볼 수 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을 포함하며 인구로는 전세계의 1/4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큰 식탁에서 함께 반찬을 나누어 먹는 중국의 젓가락은 비교적 길고 끝이 뭉툭한 편이고 각자 먹으면서 해산물이 식탁에 많이 오르는 일본의 젓가락은 짧고 끝이 뾰족한 편이다. 중국과 일본의 젓가락은 재질이 주로 나무인 반면 우리나라는 금속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금속제 젓가락을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젓가락질은 손바닥과 손가락의 근육을 섬세하게 사용하여야 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권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양인들의 손놀림은 둔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금속제 젓가락은 나무 젓가락에 비해 가늘고 매끄럽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훨씬 어렵다. 금속제 젓가락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젓가락 실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금속제 젓가락은 재활용이 거의 무한정으로 가능하므로 환경적으로도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수저를 놓는다"는 표현이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수저의 의미는 대단한 것이며 이에 대한 예절도 각별한 편이다. 요즘에는 과거 대가족 시대와 같은 식탁에서라면 어른들께 잔소리를 제법 들었을 법한 기묘한 모양으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각종 비범한 방법을 이용해서 미끄러운 국수가락이나 작은 콩자반 같은 것을 아무런 문제 없이 집어내는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젓가락 사용법에 대한 사례집이라도 발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금속활자를 개발한 문화만큼이나 자랑스러운 것이 쇠수저를 사용하는 우리 식탁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저는 금제이건 은제이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과는 전혀 무관하다. 실제로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영양소와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은 음식물이 담당하며 수저는 식탁의 음식을 우리 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명을 다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리 고급의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내 몸 안에서 소화되고 활용이 되어야 그 가치를 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섭취한 에너지를 이용해서 실생활에서 이루어 내는 나의 행위와 그 결과물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는 실제로 사용되지도 않는 물건들로서 상식과 동떨어진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 사용되는 뜻을 살펴 보아도 별반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내 입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아무리 많아도 음식은 반드시 내 몸 안으로 들어와야 비로소 나와 내 행동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주변여건을 아무리 탓해도 내가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수저는 그저 수저일 뿐이다.

서동일 충남대 공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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