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순수한-잘난 척 많은 요즘 여유 갖고 자기자신 되돌아봐야 솔직하고 담백한 내년을 위하여

매년 연말이면 갖가지 기발한 건배사가 넘쳐난다. 갖은 조어를 만들어 잘 지내보자고, 파이팅하자고 외친다. 불쾌한 술자리에 간혹 재미난 건배사라도 나오면 흥이 절로 오른다. 한국말에 능숙한 외국인이라도 있다면, 이 장면이 무척이나 흥미로울 성 싶다. 앞글자만 딴 조어가 난무하는 술자리 건배문화는 한국인인 필자도 익숙해지는데 한참 걸렸다. 어떻든 재미있는 문화현상이다.

수많은 건배사에 필자도 하나 얹어 보자면, 내년에는 `척, 척, 척` 선창하면 `노~~우`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위선적 세류에 반성도 할 겸, 새해 조금이라도 솔직해지고, 담백해진, 여유로운 사회가 되길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이런 희망쯤 여기저기 외치고 다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착한 척 하는 사람, 순수한 척 하는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그렇지 않다는 내 모습을 알고서도 공공연히 훌륭해 보이려는 안쓰러움이라니.

착한 척하는 이는 남 앞에서 공공의 일을 맡아서는 안 된다. 이들의 습성이란 게 선한의도로 이런저런 일을 시작하여 그만큼 인기를 모으는데 능하다. 이런 인기를 모아 다시 공적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황당한 건, 시간이 흘러 그가 떠나고 잊혀져갈 무렵이 되면, 슬슬 어려움이 시작된다는 거다. 세상에 자기가 가장 착한 사람인 양 말하던, 그래서 손뼉 치며 맞장구 해 주었던 그의 말이, 사실은 미래의 소득을 당겨쓰자는 수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식과 손자세대에 지금의 어려움을 몇 곱절로 안겨 버리는 무책임함임도 알게 된다. 새해엔 세상에 자기가 제일 착한 사람인양, 이런저런 세상일을 도모하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자.

순수한 척 하는 이는 사실은 흉측한 사람이다. 이기심이란 인간의 속성을 애써 감추려는 이런 이는 한번 의심하고 볼 일이다. 수년째 세계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온통 불편하다 난리다. 호구지책에 어려우니 왕년의 호사가 언제 일인가 싶다. 순수한 척하는 사람은 이런 때 빛을 발한다. 마음에 이기심의 능구렁이를 품고 순수한 척, 온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다닌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자기 살길에 좀 더 예민한 이 때, 누군가가 순수한 척 손을 내민다고 선뜻 잡아서는 안 된다. 어떤 거래든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게 좋든 싫든 자기책임이란 걸 명심하자. 때론 운이 없다 여기겠지만 그 역시 내 몫이다. 내 운을 나 말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겠나. 새해엔 내 당연한 책임을 순수한 척, 요행이 있는 척하며 다가오며 아닌 말로 유혹하는 이도 조심해야겠다.

잘난 척은 좀 해야겠지만 과하면 안 된다. 사실 누구나 잘난 척하기 위해 산다. 시험을 잘 치르거나, 취직을 잘 하거나, 승진을 잘 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모두 잘난 척할 거리다. 이 정도 공명심이야 애교이고 귀엽다. 삶의 원동력이다. 이런 잘난 척이 문제가 될 때는 자기 분수를 몰라 넘칠 때부터다. 귀여움이 불편함과 재수 없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안타까운 건 너무나 잘난 나에게 언제부터인가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거다. 장년에 이른 큰 어른한테 오버하지 말라고 선뜻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지적하며 성마르다, 까다롭다,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다. 그래서 잘난 척의 브레이크는 스스로 만들어 밟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일상을 조금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여유를 갖고 자기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돌아봐야 한다.

간만에 참 향기가 진한 좋은 사람을 만났다. 진솔함과 유쾌함, 그 속에 작은 겸손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처음만나 두어 시간 오갔던 이야기의 여운이 집에 오는 내내 마음에 따뜻하게 남았다. 사람이란 게 다른 사람한테 참 좋은 사람일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배웠다. 척·척·척을 내려놓은 50대의 이 중년신사가 풍기고 다니는 상쾌한 향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엔도르핀을 주었을까. 참 부럽다. 누군들 착한 척, 순수한 척, 잘난 척 하고 싶지 않을까? 나이 든다는 게 위선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했다. 초고속으로 척·척·척을 배워 위선을 실천하고 있는 필자 역시, 새해엔 이 위선으로 가는 시간을 거스르며 살아보고 싶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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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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