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계층분열 깊은 현실 집회 자유-봉쇄 갈등 심화 불통이 낳은 소모적 논쟁 통합·화합 메시지 큰 울림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유훈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이란 한마디가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가 분열과 갈등의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안그래도 이념 대립에 지역간 분열이 첨예한 가운데 세대간 계층간 갈등까지 깊어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그만큼 통합과 화합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누구든 쉽게 통합과 화합, 그리고 소통을 얘기한다. 하지만 늘 기득권에 가려 실천력을 담보하기는 어려운 말장난에 그치는 일이 대부분이기에 YS의 유훈은 울림이 크다. 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말이기에 진정성도 있지만 길고 긴 정치역정에서 숱한 좌절과 회한, 영광의 순간을 모두 거친 그의 염원이 함축된 것이기에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오랜 경원과 반목을 해왔던 동교동과 상도동계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매개로 모처럼 화해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엊그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송년회에서는 양측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청산`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합`이란 유훈을 받들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데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참석, 통합과 화합을 통한 사회발전을 위해 민추협 동지들이 다시 힘을 합쳐 노력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통합과 화합, 상생과 소통이 시대적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지만 요즘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마치 2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전반적으로 소통 부재란 지적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몇년 새 사회분위기는 상당히 경색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달 14일에 열렸던 민중총궐기대회를 계기로 그 양상은 심화돼 내일로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 속에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걱정이 앞선다. 1차 대회 때 야기된 대규모 폭력사태와 경찰의 대응은 요즘 한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응팔`(응답하라 1988)의 80년대 후반 상황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당시는 민주화를 둘러싼 진통이었다면 오늘날은 계층간 갈등이 표출되는 것이 다를 뿐 시위양상과 경찰의 강경진압은 80년대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경찰은 일단 5일 예정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집회신고와 `백남기 범국민대책위`의 도심 행진을 금지 통보했다. 폭력사태에 재발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집단적인 폭행,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는 금지할 수 있다는 집시법이 근거로 삼고 있다. 어떤 명분이 됐든 폭력은 용인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보면 경찰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금지통보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가 대안으로 내일 서울 도심에서 평화적으로 열겠다고 신청한 집회까지 금지한다는 경찰의 방침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강행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당국은 평화적 집회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는 태도고 주최 측은 과도하게 차벽을 세우고 막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폭력이 벌어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것과 다름없는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소통과 경청 부재로 인한 오해와 불신,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관용과 배려의 실종 등이 오늘날의 갈등과 대결을 가져온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작고하면서 통합과 화합이라는 유훈을 남긴 것은 공교롭게도 현 정국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관통하는 시대에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었던 그에게 귀일점은 결국 하나로 뭉쳐 역동적이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훈을 소중히 여기고 이어가는 일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일진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귀를 막고, 서로 다른 얘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모쪼록 내일 집회가 불상사가 없이 막을 내렸으면 한다.

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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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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