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표시하여 칼을 찾다`라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찰금(察今)`편에서 유래했다.

감히 법을 따지지 못하는 사람은 일반백성이고(夫不敢議法者, 衆庶也), 법을 사수하는 사람들은 관리이며(以死守者, 有司也),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을 바꾸는 사람은 현명한 군주이다(因時變法者, 賢主也). 이 때문에 천하에 71명의 왕이 있었는데 법이 모두가 달랐다. 이것은 서로 다르게 하려고 힘쓴 것이 아니라, 시대의 추세가 다르기 때문이다(非務相反也, 時勢異也). 그래서 "잘 자를 수 있으면 좋은 칼이지, `막야`와 같은 명검일 것까지는 없다.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으면 좋은 말이지, `기오`와 같은 명마일 것까지는 없다"라고 한다. 공을 세워 이름난 왕이 바로 천리마이다. 어떤 한 초나라 사람이 강을 건너다가 칼을 배에서 물로 빠뜨렸다(楚人有涉江者, 其劍自舟中墜於水). 그는 급히 배에 표시를 하고는 말했다(遽契其舟曰) "이곳이 내 칼을 떨어뜨린 곳이다(是吾劍之所從墜)." 배가 멈추자 그는 표시해놓은 곳을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았다(舟止, 從其所契者入水求之). 배는 이미 지나갔고 칼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舟已行矣, 而劍不行). 칼을 찾는 것이 이와 같다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求劍若此, 不亦惑乎) 이렇게 오래된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다(以此故法爲其國與此同). 시대는 이미 바뀌었는데도 법을 바꾸지 않고 다스린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時已徙矣, 而法不徙, 以此爲治, 豈不難哉).

지난 주 민주화의 거목을 보내는 국가장이 있었다. 영결식에 참석한 구리시립 소년소녀합창단원들은 1시간 30분 이상을 추위에 떨며 대기하다가 노래를 불러야 했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의전`(儀典)에 얽매여 뱃머리에 새긴 표시만 기억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었어도 의식이 변하지 않으니 문제다. 충남대 국제화사업단 부장·중문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