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사람·꽃·나무 등을 그린 그림 모두가 그렇다. 꽃을 그렸으되 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일찍이 파이프를 그려 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우긴 화가가 있지 않았던가. 황당하지만 맞는 말이다. 그림은 그림일 뿐 실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학도라면 이를 `이미지의 반역` 또는 배반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서양화가 김홍주(1945∼)는 세필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이퍼 리얼리스트이기를 거부한다.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현실에 있는듯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산수란다. 대표작 `무제(1992)`도 그 범주에 속하는 그림이다. 부감법 형식을 빌려 그렸다. 언뜻보면 특정지역의 지도처럼 보인다. 울퉁불퉁 실제 모양을 빚어서 색을 입힌 입체형 지도 같지만 존재하는 지형은 아니다. 관념산수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작품은 극사실주의에 가깝다. 계곡을 따라 냇물이 흐르고, 여러 개의 내가 합류해 강물을 이뤄 바다에 이르는 형상이다. 내와 강 유역에는 논과 밭이 다랑이를 형성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양지 바른 산 기슭에는 옹기종기 집들이 처마를 맞대 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육지가 끝나는 하구에는 꼬불꼬불 리아스식 해안과 함께 크고 작은 만과 포구가 펼쳐져 있다. 바다에는 섬들이 점을 찍어 놓은 듯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육지에서 좀 먼 바다에는 방파제를 닮은 섬이 병풍처럼 자리를 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치열하게 그렸지만 작위적이지가 않다. 부감법으로 그린 지도인데 거꾸로 자세히 보니 남자의 얼굴 윤곽이 나타난다. 이중 그림 기법을 통한 이미지의 반전이다. 둥근 얼굴에 눈, 코, 입이 너무도 또렷하게 나타난다. 산등성이가 여체로 보이고, 산의 굴곡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경험을 통해 착안했다고 한다. 보이는대로 그렸을 뿐이고 의미나 메시지를 찾으려하면 그림이 어려워진다. 보이는 형상을 그대로 보고 이해하면 된다. 제목이 달리 무제가 아니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김홍주는 본래 그림 애호가들로부터 꽤 인기를 얻고 있는 터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컬렉션에 작가의 꽃그림 시리즈 25점이 무더기로 나와 경매를 통해 완판되면서 화단과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충북출신으로 홍익대를 졸업하고 목원대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직을 한 후 지금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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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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