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뒷골목 풍경이다. 슬래브 건물과 기와지붕이 열병하듯 들어서 있고 콘크리트 포장길에는 양산을 쓴 여인이 홀로 걸어간다. 보기엔 영락없이 재개발을 앞둔 인적이 뜸한 도시 변두리 모습이다. 결론이 이쯤 되면 엄청난 오류다. 정확히 86년 전 서울 심장부다. 첨탑의 건물이 바로 서울시 구 청사(경성부청)다.

도심 뒷골목 풍의 그림은 월북작가 김주경(1902-1981)이 그린 `북악을 등진 풍경(1929)`이다. 오래된 그림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보인 것은 당시로선 현대식 건물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모던 걸 등 낯설지 않은 전경이 감상자로 하여금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북악을 등진 풍경`은 조선전람회 특선 작으로 김주경의 남아있는 몇 안되는 작품 중 수작으로 꼽힌다. 작품의 배경은 서울 서소문 정동일대 덕수궁 돌담길이다. 경성부청 청사 등 근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건물의 반대편의 흰색 벽처럼 보이는 것은 덕수궁 돌담이다. 돌담길을 걸어가는 여성은 흰색 원피스 차림에 주홍색 양산을 쓰고 있다. 신여성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화가는 서양 스타일의 여성 복식과 함께 근대식 건물을 통해 서울의 근대화된 서울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대화의 첨단을 걷는 서울 중심의 풍경을 마치 사진 찍듯 그려낸 작품이다.

김주경은 오지호와 함께 조선의 자연을 바탕으로 인상주의 화풍을 정립시킨 주인공이다. 이 작품에서도 인상주의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건물과 산과 나무, 돌담이 고유색 대신 은회색으로 채색을 했다. 눈부신 태양빛에 융화되면서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그림자와 그늘은 청색조를 보인다. 인상파 풍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이다. 작가가 추구했던 `빛으로 충만한 색채의 향연`이자 한국적 자연과 풍토에서만 나타나는 한국의 색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미술이론가이기도 한 작가는 충북 진천 출신으로 특선 3회 후 조선미술전람회를 어용 전람회로 규정하고 참여하지 않았으며 1938년 오지호와 한국 최초의 원색 화집을 발간한 주인공이다. 광복 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 월북해 평양에서 평양미술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해금이 되기 전까지는 거론조차 불가능한 작가였다.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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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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