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치열한 현대사회 정치인 직무유기 만연 공정한 선거로 검증을

모름지기 남 앞에 나서려면 남다른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장에선 뭔가 특별한 게 없으면 망하기 일쑤다. 세상을 얕잡아 보고 섣불리 나섰다 낭패를 보는 사람들은 주위에 너무나 많다. 치킨집, 동네가게에서부터 큰 기업에 이르기까지 넘치는 실패의 스토리가 그 증거다.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오늘도 무언가는 비장의 무기로 다듬고 살고 있다. 그게 지식이든, 유머든, 매력이든, 교양이든. 이 중 어떤 것에라도 인정을 받아야 엄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치판에선 망해서 낭패를 봤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른 아침 동네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만들려고 부산을 떠는 것처럼 부지런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번 일을 벌이면 망했다는 사람도 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주변에 국회의원이,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그 직을 수행하다 낭패를 봤다는 예는 의외로 찾기 힘들다. 세상의 거센 풍파와 매일매일 싸우고 있는 보통사람에 비하면 말이다.

세상에 늘 문제가 있지만 이런 문제라면 심각하다. 우리가 불편한 일을 대신 좀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대표를 뽑아 놓았는데, 진짜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으니까. 이런 불편한 현실을 목도하며, 오늘도 우리는 정치대표자의 나태함과 황당함을 토로한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람자체의 문제일까? 우리의 복잡하고 냉혹한 삶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행태가 정치대표자에게서 훨씬 빈번하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닌 제도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대표자들도 자신의 생업에는 치열할 정도로 열심임을 잘 알고 있다.

잘 되는 국가와 조직은 이유가 있다. 좋은 대표를 가지고 있고, 좋은 대표를 키울 수 있고, 좋은 대표를 찾아낼 수 있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시대는 이런 제도를 갖추고 있는가? 무엇보다 퇴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게 문제다. 4년마다 선거를 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자문하겠지만 한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선거행위는 개인이 각자 숙고한 과정이라 결론짓기엔 부끄러운 점이 너무 많다. 지방대표자 선거 수준으로 오면 사정이 더욱 심각해진다. 솔직히 누가누군지 잘 모른다. 어느 당, 누구 동생, 한두 번의 안면이 판단의 근거다. 이도저도 아니면 지방선거라는 것이 아닌 말로 답을 모르는 객관식 문제에 연필을 굴려 판단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런 마당에 정치대표자에 대한 퇴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란 아예 힘든 일이다.

정상적인 퇴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정치대표자는 잘못된 인센티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무실에 앉아, 문제가 있는 곳에,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데 온힘을 쏟고 갈등을 조정하려 애쓰고, 새로운 정책과 법제도의 설계를 하기보다, 여기저기 행사를 쫓아 다니기 바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정책도 지역주민이 좋아한다며 통과시킨다. 민의의 정치의 잘못된 구현이다. 모름지기 우리가 대표를 뽑아 쓰는 게 우리 생각대로 해 달라는데 그 취지가 있는 게 아니다. 공공문제도 전문가가 있으니 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보다 좀 더 고민해서 더 좋은, 심지어는 우리 개개인은 잘 모르거나 잘못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설득할 사람을 쓰자는 게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선거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정치대표를 거르는 것이야 말로 인류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발명해 낸 훌륭한 고안품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는 정치대표자 선거라는 제도를 운영할 것이고, 그 결과를 존중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뽑은 정치대표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정말 공동체와 관련된 중요한 일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정치대표자에게 우리가 부여한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이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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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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