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논란속 학습자 배려 외면 한글 우수성 유네스코도 인정 세계적인 문자 활성화 역주행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찬성과 반대 논의가 매우 많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학습자`에 대한 이야기는 누락되어 있다. 어떠한 정책이나 입안 과정에서 당사자(교육에서는 `학습자`)에 대한 요구 또는 필요 조사는 필수이다. 초등 학습자들에게 `현재 배우는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어 보았는가? (여기에서의 물음이란 `간접적으로 묻는 경우(설문 등)가 아니라, 실제 현재 교과서 체제와 한자가 병기된 교과서 체제의 예를 주고 어느 정도 안내와 학습을 한 후에 직접적으로 묻는 경우`를 뜻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물음에 초등학생들은 동기, 흥미, 관심도 등에서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동기, 흥미, 관심 등의 정의적인 요인이 부정적이라면 이는 인지적인 학습까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글날 즈음하여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한 길을 초등 학습자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다음 사항을 물어 보라. "지금 너희들이 스스로 한자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가?", "한글 옆에 한자가 같이 쓰인 동화를 읽는다면 지금보다 동화를 더 좋아할 것 같은가?", "교과서에 한자가 쓰여서 `한자 학습`을 지금보다 더 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 것인가?" 초등학생 입장에서 생각하기 어렵다면 다음의 물음에 독자가 직접 답을 해 보라. "독자들께서는 지금 읽고 있는 신문이나 소설, 자기계발서에 한자를 병기한다면 지금 한글로만 된 글(책)보다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은가?"

한자를 몰라서 지금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읽기 능력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우리나라 학생이 OECD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읽기` 인지적 능력이 매번 최상위(2003년 2위, 2012년 세계 1-2위 등)라는 결과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읽기 능력(교과서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아도)이 충분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하지만 읽기 인지적 능력은 최상위이지만, 읽기 정의적 능력(흥미, 태도 등)은 반대로 최하위 권이라는 결과에 주목한다면, 교육의 목표는 읽기에 동기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이 입안되어야 한다. 한자 병기된 국어책, 한자 병기된 사회책, 한자 병기된 과학책이 현재처럼 한글로만 된 책보다 더 읽고 싶은 심리적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

교과서 한자 병기를 또 다른 큰 문제점은 한자 병기된 교과서를 배우는 학생들은 `한글만으로는 우리말을 표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한글은 소리-글자-의미의 일치도가 매우 높은 효율적인 표기 체제를 갖춘 문자이다. 우리말에 표기에 한자 병기가 없어도 알맞게 표기할 수 있고, 빠름과 정확성을 강조하는 정보화 시대에도 적합한 문자이다. 또한 한자를 쓰거나 읽을 줄 몰라도 한자어의 뜻은 생활 속에서, 또한 문맥 속에서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이러한 문식성(literacy) 결과는 앞에서 제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의 `읽기` 능력 결과만으로도 증명이 된다).

한글의 우수성은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은 1989년에 제정돼 1990년부터 시상해오고 있는 상으로 문해, 특히 개발도상국 모어(母語) 발전·보급에 크게 기여한 개인, 단체, 기구 2명(곳)에게 매년 9월 8일 문해의 날에 시상하는 상이다. 이는 유네스코에서도 한글이 문맹 퇴치에 세계적인 기여를 하는 세계의 대표적 문자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교과서를 직접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학습자에게 묻지도 않은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가?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아도 학습자들의 문식 능력이 매우 우수한데도 이 정책을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계적인 문자인 `한글`을 가진 나라로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대에, 이와 반대인 한글 홀대 정책인 교과서 한자 병기로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한글날 즈음하여 묻는다.

조재윤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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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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