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돼야 하며,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 국가법과 지방계약법의 계약원칙이다. 또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쌍방간의 계약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체감한다. 특히 대전에 있는 몇몇 공공기관이 입찰을 통한 용역에서 계약원칙을 저버리고 불공정한 관행으로 계약이행을 요구할 때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건축물이 안전하고 용도에 맞는 기능을 갖도록 설계하는 것은 설계를 하는 사람의 기본업무다. 요즘은 이 같은 기본 업무 외에도 에너지절약형 건축물 및 친환경 건축물과 무장애 건축물 설계, 도시계획업무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비용 지불 없이 이런 추가업무를 요구한다. 누가 봐도 불공정한 계약이다. 제대로 된 건물을 만들기 위한 설계와 감리를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용역비가 지불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법으로도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기관에서는 법 기준을 무시하고 아무런 이유나 근거 없이 임의로 설계비나 감리비를 삭감하기도 한다. 또한 해당사업에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 건축전반에 걸친 과업지시서로 계약자를 옳아 메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안전하고 기능에 맞는 건물을 기대한다. 모순이다.

설계나 감리 중 공사비나 공사기간이 늘어나면 법에서 정한대로 만큼만 용역비의 증액을 요구하지만 지급되지 않는다. 많은 공공기관의 계약서류에 `용역비가 과다산정되면 반납하지만 증가요인이 있어도 추가로 지급하지 않는다`라고 돼있다. 말 그대로 갑의 횡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관행과 예산 절감, 실무자의 무지로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공기관이 부실 설계, 감리를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각 기관의 장들이 필히 점검을 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도 일선에선 전혀 공정하지 않은 관행이 이뤄지고 있으니, 공공기관의 횡포이며 갑질이다. 여기에는 대전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건축물이 안전하고 기능에 맞으며 아름답게 지어지려면 이에 필요한 비용도 수반된다는 것을 공공기관부터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는 계약원칙이 준수되는 공정한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김재범 대전건축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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