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로 인한 인적 피해는 막심하다. 24일 기준으로 사망자만 27명에 달한다. 확진자는 179명이고, 격리자는 증가세로 돌아서 3100명이 넘는다. 진정세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선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는데 심각성은 더하다. 아직까지 위중한 환자들이 있고,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확진자나 격리자가 늘어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국민 불안이 가중되는 이유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 각계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세계적 수준인 국내 의료는 신종 바이러스 하나에 처참하게 구멍이 뚫렸다. 자타가 자부하는 대형 병원에선 메르스 확진자가 속출했다. 특히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은 부분 폐쇄와 대표자가 사과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번 사태는 일상 생활의 풍속도도 송두리째 뒤바뀌게 했다. 30도가 넘는 한여름에 마스크 열풍이 불고,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기침이라도 하면 왠지 눈치가 보이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몸이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약국을 찾게 되는, 그러면서 병원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이런 비정상적인 일상성은 납득하기 어렵다. 병문안과 조문, 결혼식 풍토가 달라지고, 사람이 모이는 곳을 꺼리는 불가피한 기피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메르스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컸다. 직격탄을 맞은 충청권이 대표적인 사례다. 메르스 사태 이후 유통업을 비롯해 관광, 건설 등 지역경제를 이끄는 주요 업종의 타격이 컸다. 유통업계는 방문객이 줄면서 매출액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관광업종의 경우 예약 취소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건설업계도 분양에 차질이 우려되고, 숙박업소 역시 여름철 예약 취소가 잇따르면서 비상이 걸렸다. 다중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음을 방증한다.

초유의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면서 지난해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메르스는 전염병이고 세월호 참사는 해상 사고라는 점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두 사건을 관통하는 명확한 공통 분모가 있다는 얘기다.

우선 초동 대처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메르스의 경우 최초 발병자는 발열 증세를 보인 9일 뒤에야 확정 판정을 받았다. 환자는 이 9일 동안 병원 여러 곳을 전전했다. 이후 2차 감염자가 급증했다. 그제서야 보건당국은 격리 대상을 찾아내며 관리망을 가동했다.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관계기관이 허둥대기만 했고, 구조와 무관하게 시간만 허비했다. 이 역시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쳤고,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했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 현상도 그대로 노정됐다. 메르스 사태는 확진 환자가 나오고 감염 환자가 확산됐지만 컨트롤 타워는 오락가락 했다. 처음에는 질병관리본부장이 대책본부장을 맡았고 복지부 차관이 뒤를 이었다. 사태가 확산돼서야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세월호 참사 역시 눈 앞에서 배가 침몰하는 상황인데도 사고의 총괄 부서가 누군인지, 총괄자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관계부처 간 정보 공유도 그렇거니와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생사가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책`은 없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세월호 참사는 그런 허망한 문제점만 잉태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또다시 두려운 것은 대형 사고나 사건에 대한 우려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세상사 이치. 특히 세월호 사고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메르스 사태 초기 `낙타와 접촉을 하지 말라`는 황당한 지침이 개그 프로의 소재화되는 현실은 감당하기 어렵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당국이 재발 방지를 으레 약속했지만 그 신뢰에 금이 간지 오래다. `사후약방문`이라는 말이 회자되지만 말 그대로 사후에라도 처방이 제대로 내려지기를 고대하고, 고대할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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