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본인 이름으로 다가구주택을 지어 살고 있는 A씨는 건축물에 발생한 하자 문제 협의를 위해 연락이 끊겨버린 시공자의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해당 구청을 찾아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건축 당시에 분명히 도급을 주어 시공을 하였음에도 시공자란에 본인의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는 A씨만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소형 건축물에 해당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설업 면허가 없어도 누구나 시공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법에 기인한다.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동법에 의한 건설업자만이 시공이 가능한 건축물의 범위를 연면적 660㎡를 초과하는 주거용 건축물, 연면적 660㎡ 이하인 공동주택, 연면적 495㎡를 초과하는 주거용 이외의 건축물, 연면적 495㎡ 이하인 건축물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건축물과 기타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다가구주택과 다중주택 그리고 3-4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용 건축물 대부분이 건설업 면허와 관계없이 자연인 누구나 건축이 가능한 건축물에 해당된다. 착공신고 시에 시공자의 신상을 정확하게 실명으로 기재하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건축주를 시공자로 신고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따라서 시공자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착공신고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건축사사무소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할 수 있다. 본인의 이름을 어디에도 남기지 않는 시공자는 책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시공이 가능한 건축물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든지, 관련법 개정이 어렵다면 실제 시공자를 실명으로 남길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모든 상품에는 제조원을 표기한다. 심지어 한 번 씹고 버려지는 껌이나 컵라면조차도. 건축물은 대부분이 주문 상품이다. 주문제작하는 상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박과 건축물이다. 주문제작하는 어떠한 상품에도 주문자를 제작자나 제조원으로 표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건축에서는 이 황당한 경우가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도 구미 선진국처럼 공사현장의 전체 시공책임자뿐만 아니라 건축공사 주요 공정의 공사책임자에 대한 공사실명제를 도입할 때가 되었다. 구조체·전기·기계설비·방수·창호·타일·석공사·도배 등의 공사책임자를 실명으로 등록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첫째 자기 분야의 업무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둘째 책임감을 고취하여 부실공사를 방지할 것이며, 셋째 사후 하자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건축물의 공사실명제! 이제는 도입을 적극 검토할 시기다. 손근익

前 대전시건축사회 회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