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이와 대화·도시락 등 느리지만 정겨운 풍경 가득 빠름 좇는 현대인 일상 속 느림의 여유 만끽할 수 있어 "

중부 내륙에서 열리는 워크숍 참가 때문에 며칠 고민에 빠졌다.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것이냐 버스를 타고 갈 것이냐. 습관적으로 두 교통편의 소요시간과 승차노동의 강도, 그리고 지불해야 되는 경비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공교롭게도 워크숍의 일정이 징검다리 휴무로 인한 연휴기간 중이었고 뉴스에서도 연일 극심한 교통체증을 염려하고 있었다.

문득 휴대전화에 설치한 철도 승차권 구입 어플이 생각났다. 지방 출장을 다닐 때마다 아주 요긴하게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단 한 번도 고속철도 승차권 외의 승차권을 검색 구입한 적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보니 목적지 인근 도시의 열차가 검색됐다. 그러나 고속철도도 아니고 새마을호도 아닌 무궁화호 열차였다. 기억하기로는 빠르기가 비둘기호, 통일호 다음으로 무궁화호였는데 이제는 무궁화호가 현존하는 가장 느린 열차였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느림에 일단은 거부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속철도 승차권을 구매해 놓고도 현지 일정에 따라 수시로 프로그램에 접속해 승차권 구입과 반환을 반복해 왔다. 반환으로 인한 수수료의 공제보다는 빠름을 좇는 것이 보편화된 일상이었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그 무궁화호 열차도 매진되었다며 빨갛게 표시가 돼 있었고 유일하게 예약가능이라며 초록색으로 표시된 시간대가 보였다. 그 시간대의 열차로는 도저히 워크숍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약 절차를 따랐다. 그런데 마지막 결제 과정 전 단계에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목적지의 도착시간이 빨랐다. 출발지까지 전철로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그 시간까지 감안해도 버스나 승용차로 어림했던 시간보다 월등하게 빨랐다. 특히 운임이 상상외로 저렴했다.

마침내 이십여 년 만에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예상은 했지만 고속철도처럼 세련되지 못했고 운임에 걸맞게 낡음과 남루함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 자기 자리도 아닌데 천연덕스럽게 앉았다 일어나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한없이 느릿했다. 아주머니는 자리를 비켜주고도 바로 옆 통로에 지켜 서서 떠나지를 않았다. 마치 내가 자리를 뺏은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건너편 의자에 앉은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더니 마음 놓고 울음을 터뜨렸다.

큰 소리로 전화 받기, 동행인과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하기, 눈치 보지 않고 냄새나는 음식 먹기, 통로에 아이들 뛰어놀게 하기….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고속철도에서는 어림없는 일들이었다. 시간에 쫓겨 열차를 탄 사람들의 긴장감이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패드나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아도 긴장을 하고 미간을 찡그려 주름을 만드는 것은 딱 한 사람,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랫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가스가 나오려고 했다. 고속철도라면 응당 객차의 연결통로나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지만 어수선함을 이용해 살그머니 일을 보고 말았다.

배 속이 편안해지자 비로소 마음도 느슨하게 풀어졌다. 낯선 사람의 전화 통화를 들으며 건너편 수화자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 풍기는 냄새를 통해 야채 김밥인지 참치 김밥인지 가늠해 보며 침을 삼키기도 했다. 통로에 서 있는 아주머니가 엉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게 팔걸이에 걸쳤던 팔을 내려 몸을 반대편으로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가끔가끔 바깥 풍경을 보며 짙어가는 초록으로 눈을 씻었다.

승용차나 버스를 탔더라면 분명히 고속도로에 있을 시간에 나는 목적지의 한적한 기차역에 내렸다. 바쁘고 빠른 것에 익숙해진 일상, 느림은 불편함과 지루함 또는 비현실적이라는 나의 절대적인 사고가 여지없이 무너진 무궁화호 탑승이었다.

홍종의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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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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