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감소로 빈곤층 전락 일부 비윤리적 행동 노출 사회적 권위 하락 부추겨

`9988234` 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2, 3일만 앓다가 4일째 편하게 이 세상을 떠나면 좋겠다는 주로 중장년층의 술자리에서 쓰는 우스갯소리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12.7%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인인구는 대체로 20% 이상으로 숫자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노인들의 삶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도 심각하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8.5%. 다시 말해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이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노인의 비율이 OECD 회원국들에 비해 거의 3배 수준이지만 연금은 충분치 않아 많은 노인이 열악한 노동을 하면서 끼니를 잇는 고된 삶을 살아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노쇠한 육체는 하나 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많은 노인이 치매, 뇌졸중, 당뇨 등 만성질환에 시달린다. `구구팔팔`이 아니라 `구구골골`이다. 매일같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보니 노인은 젊은 사람의 3배에 이르는 의료비를 쓰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보면 자신이 평생 쓰는 의료비 절반을 노년기에 편중해 쓰는 셈이다.

부(富)의 쏠림현상인 양극화의 문제도 노인들에게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어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의 축적에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 사회의 노인들이 그 사회의 금융, 부동산 등의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소득은 많지 않더라도 축적된 부를 가지고 편안한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부를 축적하지 못한 사람은 노년기에 상대적으로 훨씬 더 힘든 삶을 보낼 수밖에 없다.

보통 양극화의 정도를 측정할 때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양극화현상은 점점 더 심해져 최근 20년 동안 중산층의 10% 정도가 저소득층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자산을 포함시켜 양극화의 정도를 측정한다면 노인들의 양극화 정도는 전체인구의 양극화 수준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노인은 이제 더 이상 젊은이의 존경 대상이 아니다. 매년 거의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는 단순한 농경사회에서의 노인은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로 권위를 갖게 됐고 젊은이의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 처할 때 노인들에게 지혜를 구하고 젊은이들은 노인의 말에 순종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유입되는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에 노인들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 정보 접근수단인 전자기기의 사용에서 노인은 젊은이에게 한참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일상생활에서 젊은 사람에게 익숙한 일도 노인에게는 너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다가온다. 노인들은 TV 속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웃어야 되는지를 손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젊은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다루기도 힘들다.

더구나 윤리적으로도 오염돼버린 어른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과거 씨족사회처럼 호형호제하면서 공생하는 듯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해가 상충되니까 시커먼 구렁텅이로 서로 밀어 넣는 어른들. 자기 혈육에게만 부귀영화를 물려주기 위해 온갖 노하우와 인맥을 동원하는 노인의 모습이 언론에 종종 비춰진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국제시장`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한국전쟁 이후 부모와 자식의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던 삶. 이억만리의 땅에서 탄광에 갇혀 석탄을 캐고, 남의 전쟁에서 총구를 겨누었던 삶. 지금의 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바로 지금의 노인이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비교적 잘 나간다는 노인들 중에 전체를 욕 먹이는 일들을 벌이고 있으니 무척 안타깝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던데…. 필자도 얼마 안 있어 이 그룹에 들어가게 될 터인데 좀 더 산뜻하고 품위 있는 시니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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