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좋은 집터의 조건으로 뒷산과 앞에 내가 있어야 하고 (背山臨水), 남향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는 겨울엔 북풍한설을 막아주고, 따뜻한 햇볕이 주는 아늑함을 추구한 탓이다. 그러한 곳을 찾아 살다 보니 인구가 밀집한 면단위 이상 도시의 대부분이 뒷산과 앞에는 하천이 흐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도시의 남측에 도로가 있거나 남향인 대지의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싸게 형성됐다. 그러나 일조권 규정이 도입되면서 일조권 확보를 위한 공간을 북측에 확보하게 되었고 땅값이 역전되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현행 건축법에서는 주거 부분의 일조권 확보를 위한 규정이 있어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개정 건축법에 의하면 일반주거지역과 전용주거지역 내에서는 건축물높이 9m 이하인 부분은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1.5m 이상을, 높이 9m를 초과하는 부분은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해당 건축물 각 부분 높이의 2분의 1 이상을 진북방향으로 이격하도록 되어 있다.

중부지방에서 동지(冬至)일 기준으로 9시에서 15시 사이에 최소 2시간 이상의 일조시간을 확보하려던 입법 초기의 의도와는 달리 최소 일조시간을 보장할 수 없는 수준으로 후퇴한 내용이다. 아파트의 인동간격도 초창기의 1.5배에서 1.2배로 완화되더니 이제는 최대 0.5배까지 가능하게 됐다. 이는 조망권, 세대 간의 프라이버시는 물론 일조권의 심각한 침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일조권 관련 소송이 증가하고 있으며, 대법원에서는`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는 어떠한 건물 신축이 건축 당시의 공법적 규제에 형식적으로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일조방해의 정도가 현저하게 커 사회통념상 수인한도를 넘은 경우에는 위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건축법에서는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일조권 이격을 북측에 두어 주택의 공지가 남측 뜰이 아닌 북측에 남아 효용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하여 택지개발지구 등의 신개발지에서는 남쪽에 일조권을 이격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구단위계획만으로 남쪽 일조권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어느 택지개발지구도 일조권을 북측에 두고 있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이 규정의 취지를 살려 지구단위계획에 적극 반영하길 기대한다. 누구나 북쪽의 공터가 아닌 남쪽 뜰이 있는 주택을 원하기 때문이다. 손근익

前 대전시건축사회 회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