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을 떠나는 딸 아이의 뒷 모습은 부모를 먹먹하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집단기억 때문이리라. 지난해 오늘 세월호가 절반쯤 뒤집어진 상황에서 `학생 338명 전원 구조`라는 TV 자막이 흘러나올 때부터 불길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해군 출신들의 의견은 달랐다. 경험으로 보아 구조가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6800t급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고, 295명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인양되지 못한 선체에는 지금 9명이 남아 있다. 그리고 1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원인은 예상대로였다. 선사 측의 무리한 증톤과 과적, 조타수의 조타미숙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검찰 수사결과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요원들의 관제가 허술했고, 해경 123정 역시 구호 조치에 허점을 드러내면서 인명 피해를 키웠다. 상상 가능한 모든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초동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장은 가장 먼저 달아났고, 해경은 스스로 탈출한 사람 외엔 누구 하나 구출하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탐욕이 있었고, 부패와 무능이 있었다.

참사 뒤에도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안전사고는 정부를 비웃듯 이어졌다. 참사 한 달여만에 고양종합버스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했고, 10월에는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공연 중 환풍구가 추락해 16명이 숨졌다. 인천 영종대교에서 106중 연쇄 추돌사고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천 강화 캠핑장 화재와 용인 교량공사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을 운운해선 안될 일이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과 치유 방식은 더욱 안타깝다. 세월호가 정치 이슈화되면서 유가족들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커졌다.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는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회복 불능으로 만들었다. 정부는 세월호를 인양해 원인을 보다 분명히 규명하는 게 우선이건만 배상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유가족들을 돈만 아는 사람들로 만들었다. 유가족들을 위한 위로와 배려는 뒷전으로 밀렸다. 가슴 아파하는 국민들의 자리 역시 점차 좁아지고 있다.

난산 끝에 탄생한 세월호 특위는 4개월이 되도록 출범을 못하고 있다. 특별법 시행령안이 오늘 차관회의에서 논의될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내부적으로 검토와 조율이 덜 끝났다는 변명이 군색하다. 사실 특별법은 합의 시점에서부터 파행을 예고했었다. 핵심 기능을 맡는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여당 몫이 됐기 때문이다. 활동 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정국이 블랙홀에 빠져든 현실을 감안하면 정치권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참사 책임론은 여전히 법정 공방 중인데 언제쯤이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지 의문이다.

정부 부처와 정치권은 추모 행사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국민안전처는 `국민안전 다짐대회`를 열기로 했고, 여야는 대정부질문 일정을 잡아놓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추모 현장을 찾을까. 어제는 정부서울청사를 방문해 세월호 희생자 가족 등에 대한 지원 상황과 추모비 건립 같은 추모관련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했다. 하지만 추모 행사 당일 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오를 예정이어서 논란이다. 어떤 치유책으로 유가족을 보듬을지 지켜볼 일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스페인에서 비슷한 사고가 터졌다. 334명이 탄 1만2000t급 여객선에 화재가 발생했다. 선장과 해경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고, 단 한 명의 피해자 없이 돌아왔다. 2012년 3월 동일본 대지진 1주기 추모 행사도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80대 고령인 아키히토 일왕은 심장수술을 받아 요양중이었음에도 직접 추도문을 낭독하며 희생자를 애도했다. 대형 참사를 이겨내고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오늘, 대한민국의 어두운 자화상을 본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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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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