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여러분! 건축학도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 우리나라의 건축계를 이끌어갈 중추적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교의 교수님들은 우리 후배들이 어깨를 활짝 펼 수 있도록 자존감을 함양하는 데 각별히 신경 써 주십시오."

얼마 전 모교 건축학과 동문포럼에 다녀왔다. 어쩌면 개교 이래 처음일 수도 있는 행사였으며,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새로 조성된 캠퍼스는 넓고 깨끗했으며,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한눈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선배 된 입장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할 후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고,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자리였으나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덕담의 전부였다.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고 공허함이 밀려온다.

한때는 수많은 전공학과 중에서 5대 인기학과에 이름을 올렸던 건축학과(건축공학 포함)의 위상은 1997년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급전직하로 추락한다. 돌아보면 건축시장은 1970년대의 중동 건설 붐을 시작으로 200만 호 건설이 있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급격한 팽창을 이루었고,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UIA(국제건축사연맹)의 조건에 맞는 교육제도로 개편한 것이 현재의 5년제 건축학과다. 치·의학 계열의 학과가 6년제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건축학과가 5년제인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의사, 세무사, 공인회계사 등과 달리 대학 졸업 후 3~5년의 실무수련을 거쳐야 비로소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장기간의 학습과 수련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여도 문제는 수급의 불균형에 있다. 2002년 5년제 건축학과 개설 이후 입학생 대비 졸업자는 59.9%, 졸업자 대비 취업자는 28.3%, 입학생 대비 취업자는 13.6%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각 대학은 건설 붐이 일 때마다 건축학과의 입학정원을 큰 폭으로 늘려 나갔으며 학교의 위상 추락을 걱정한 탓인지 경쟁적으로 5년제 건축학과를 개설하여 현재 73개 대학에 5년제 건축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60% 졸업에 28%의 취업률은 국가적인 낭비일 뿐 아니라 개인에게는 청춘의 희생이자 재앙이다.

설계 분야로 진로가 한정된 `건축학과`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로가 다양한 `건축공학과`로의 전환을 비롯해 정원 감축 등 다양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회원권익보호위원장·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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