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인 가석방·사면 시끌 장기불황 타개 이유 좋지만 대기업 국민정서 최악 시점 경제 민주화 대책 우선돼야 "

연말연시 기업인 가석방 및 사면 소식으로 시끄럽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들을 가석방 및 사면을 해야 한다는 정치권발 가석방 논의 때문이다. 재계는 일단 숨을 죽이면서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정치권은 찬반논란으로 정쟁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정부의 최종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각종 비리로 구속 수감되어 있는 기업인들을 풀어주겠다는 발상은 정부 여당에서 비롯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최고 결정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며 기업총수들의 가석방과 사면을 언급했다. 이들 2명의 무게감으로 보아 기업인 가석방 문제는 곧바로 정부의 방침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안이다.

우리 기업문화의 특성을 놓고 보면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기업인들의 역할과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굵직한 투자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 총수의 부재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기업의 사업기회 상실로 이어져 경영실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정치권이 대기업 총수 등 비리 기업인들의 가석방과 사면을 거론하고 나선 데에는 나름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대기업 총수들의 막강한 영향력과 결정권은 기업을 멍들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해 매출 수십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 총수 한사람에게 과도하게 매달리는 상황은 그리 정상적이지 않다. 특히 국가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은 총수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이자 사회의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이 시스템에 의한 경영이 아니라 구멍가게처럼 한 사람의 결정에 휘둘리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한국적 황제경영이니 재벌의 병폐라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 기업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가석방 및 사면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는 재벌 총수를 비롯한 기업인들은 수십~수백억대의 기업자금을 횡령하거나 배임 등의 범법행위로 인해 법적 처분을 받은 이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경제질서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으며 기업에게는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국격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국민들에게는 박탈감도 심어줬다. 법정에서는 이들의 과실이 속속 드러났고 언론을 통해 모두 모든 국민들에게 공개됐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이들에게 온정을 베풀자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이들의 손발을 풀어 투자도 늘리고 고용도 늘리자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재계의 주장처럼 기업인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잘못이 없었다면 구속 수감되는 일이 일어났을까. 덧붙여 기업 총수들이 수감되어 있어서 경기가 침체됐다는 증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그들을 가석방시킨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보장은 과연 있는지도 궁금하다.

정치권이 군불을 때면 성사되는 일이 적지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비리 기업인 가석방 논란도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여당 대표나 기재부 장관의 언급이 단순히 여론 탐색용이 아닌데다 이에 동조하는 세력도 많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기류도 아직은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황` 사건으로 대기업에 대한 국민정서는 최악에 달해있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 일각이 국론분열과 국민감정 악화를 부추길만한 기업인 가석방을 거론한 것은 용기를 넘어 무모하게 비쳐진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경제 활성화와 국민들을 위한다면 말도 되지 않는 기업인 가석방을 추진하기 보다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 황제경영의 전횡을 막고 경제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는 입법활동에 매진한 것이 옳다. 안그래도 갑(甲)질의 횡포에 가슴이 먹먹한 국민들이 아닌가. 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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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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