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차려입는 옷 매무새보다 항상 조금 더 추운 날씨다. 아침마다 아이들 옷차림도 더 신경 쓰인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목도리, 장갑 하나 덜 채워서 보낸 것 때문에 아내와 전화로 말씨름을 하게 된다. 이맘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감기를 앓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건강한 아이들도 있다. 추위는 모두에게 똑같을진대 거기에 몸이 반응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추위를 무사히 넘기는 것 하나도 저마다의 기본체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사람 몸도 이럴진대, 요즘 일어나는 세상사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한의학의 가장 유명한 고전인 황제내경의 유명한 문구로 '정기존내 사불가간(正氣存內 邪不可干)'이라는 말이 있다. 정기(正氣)는 몸의 내부의 좋은 기운을 뜻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건강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邪)라는 것은 외부의 나쁜 기운을 뜻한다. 외부의 병원체나 기후변화, 오염물질 등을 총칭한다고 보면 된다. 즉, 사람이 건강하면 외부의 환경이 변화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 언어로 표현하자면 면역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풀어서 얘기하면 건강 유지의 비결로 나쁜 기운을 피하는 것보다는 좋은 기운을 어떻게 내 몸 안에 자리 잡게 하고, 충실하게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바이러스, 세균 등 병의 원인을 어떻게 피하고, 병이 걸렸을 경우에는 그 원인을 어떻게 제거해서 치료할 것이냐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대의학의 관점과 어느 정도 다른 관점이다. 게다가 당장의 효과가 확연히 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많이 더디고 답답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는 데는 의심할 바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환경은 언제나 세균과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곳이지, 실험실과 같은 오염되지 않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꼭 인체와 질병에 관한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체, 사회 그리고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를 동일하게 보는 한의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의 우리 사회나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가 매일 접하게 되는 정보의 양은 매우 많아졌다. 매일 실시간마다 많은 뉴스들이 온라인으로 보도된다. 뉴스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이제 정보 소비자의 몫으로 변화되었다. 속 시원한 분석보다는 자극적이고 표면적인 현상만이 시시각각으로 전달되어 온다. 이를 대하는 우리들 또한 매우 신속한 감정적 대응으로 반응한다. 직장에서 또한 나를 괴롭히는 일들은 많다. 그럴 때마다 그 이유를 따져보기보다는 나의 상한 자존심과 감정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장생활에서 겪는 갈등부터 신문을 장식하는 많은 뉴스들 또한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속사정이 다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표면적인 문제보다는 문제의 근본을 잘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가 생긴 지점, 해결해야 할 지점, 다시 생기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는 지점은 모두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가 생긴 지점에만 집착하다 보면 나중에 낭패를 보기 쉽다. 좀 어렵더라도 근본적인 부분을 짚어나가면서 해결해야만 그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제시되고 있는 대안들이 너무 표면적이고 수치적인 해결책만 제시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모든 일은 일의 맥락을 알아서 근본을 치료하면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한 사람의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나 한 조직이 건강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은 시기라면 정기존내 사불가간(正氣存內 邪不可干)이라는 한의학의 지혜를 한 번 새겨보면 어떨까 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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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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