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초입부터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눈이 내릴 때마다 도심은 혼란스러워진다. 눈이 쌓이면 차들은 거북이가 돼 교통은 마비가 되고 염화칼슘에 녹은 눈은 길바닥의 오염물질들과 범벅이 돼 검은색에 가까운 곤죽이 돼간다. 하얗고 깨끗한 눈의 이미지는 도시에서는 이렇게 퇴색되게 마련이다.

필자는 얼마 전 일본의 가나자와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생소한 도시였지만 건축인들에겐 21C미술관과 가나자와성이 있는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도 3일 내내 폭설에 가까운 눈을 맞으며 도시를 여행했다.

그런데 가나자와시의 도심에서는 눈이 내리면 우리와는 다른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염화칼슘을 뿌리는 제설차는 보이지 않고 도로 중앙선과 인도의 바닥에 설치된 조그만 장치에서 사방으로 물줄기가 뻗어 나와 눈을 녹인다.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며 친환경적이었다. 차로의 눈은 완전히 녹아 사라지고 인도도 질퍽거려 통행은 불편했지만 빙판길로 변하지는 않았다. 물론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은 곳이라 가능한 방법이겠지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결과 눈 내린 도시 풍경은 흰색의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건축사의 눈으로 본 일본의 도심 풍경은 어느 곳 하나 빈틈이 없었다. 건축물은 물론이고 가로의 공공 시설물들도 디자인에서부터 시공상태까지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일본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느꼈던 부러움 이지만 현대 건축물과 전통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모습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화재로 소실됐지만 완벽하게 복원된 가나자와성과 곳곳의 전통거리들은 관광객을 이 도시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석축으로 된 기단 위에 목조로 지어진 가나자와성에는 성의 구축 방식이 모형으로 자세히 전시되고 있었는데, 건물 뼈대에서부터 납으로 씌워진 기와까지 그 치밀한 디테일과 시공법에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반면 개발의 미명하에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우리네 도시 개발 방식에서 그런 도시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슨무슨 마을이나 산사에나 가야 그런 풍경을 박물관의 전시품 보듯이 볼 수가 있다. 없앤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저런 도시개발 계획들을 세울 때 세월의 켜가 쌓여있는 곳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한묵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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