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는 뒷간, 똥간, 변소(便所), 측간(厠間), 정방(淨房), 통시라 하고, 궁궐에서는 '급한 데', '작은 집'이라 부르던 화장실. 사찰에서는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에서 '해우소(解憂所)'라 하였으니, 우리의 생활공간 가운데 참으로 다양한 이름을 지닌 곳이 화장실이다. 그중에서도 문화재로 지정된 품격 있는 해우소가 있으니, "정월 초하룻날 똥을 싸면 섣달 그믐날이 되어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할 만큼 속이 깊은 '순천 선암사(仙巖寺) 측간'이다.

2001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된 이 측간은 언뜻 보아서는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럴듯한 외관을 가졌다. 상부층과 하부층의 2층 구조로 기와를 얹은 정(丁)자 모양이며, 건물 앞뒤에 살창을 마련해 통풍에도 신경을 썼다. 출입구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된 풍판(風板)은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미적 요소를 고려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남자(왼쪽)와 여자(오른쪽)가 사용하는 칸이 양옆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재래식 화장실 중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를 지녔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근심을 풀 수 있도록 2열로 배치되어 있다. 참고로 측간 내부의 개인공간이 막힘이 없는 '앞 트임' 방식이어서 칸과 칸 사이의 높이가 낮아 볼일 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용자에 따라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을 필요가 있다.

이 측간이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1920년 이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선암사 측간이 더욱 정감이 가는 이유는 자연 순환을 위해 고안된 건물 구조일 뿐만 아니라 현재도 음식-대소변-거름-음식이라는 자연의 순환 방식을 실천하는 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아래층에 재와 볏짚을 깔아두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거름이 되어 밭에 뿌려지니 이 뒷간을 이용하는 사람은 오염 없는 친환경적 비움이 가능하다.

현재 선암사 측간과 함께 '영월 보덕사 해우소(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2호)'와 '측간(경북 시도민속문화재 제56-3)'이 우리의 뒷간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해우소를 이용할 때는 힘 쓰는 소리를 내면 안 되며, 칸막이 문 너머로 다른 사람과 말하며 웃어서도 안 된다는 수칙이 존재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하고 싶다. 서구식 화장실에 밀려 사찰의 해우소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뒷간을 즐겨 사용하며 비움을 만끽할 것.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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