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가우디와 피카소의 나라 스페인에 다녀왔다.

세계 2위의 관광대국인 스페인은 관광사업의 비중이 GDP의 11%고 고용도 전체 취업자 수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의 수만 해도 무려 3600만 명에 달해 지난해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우리에겐 부러울 따름이다. 스페인 관광의 대부분은 자연경관이 아닌 건축기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풍의 독특한 건축물과 주요 도시마다 산재해 있는 성당건축은 스페인 관광을 대표하며 무엇보다도 바르셀로나의 건축기행은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자리하고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 파리의 에펠탑이 그 도시를 상징하듯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를 떼 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자연과 곡선을 사랑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이 시내 곳곳에 널려 있어 바르셀로나를 `가우디의 도시` 또는 `가우디가 먹여 살리는 도시`라고도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럽을 풍미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 건축의 스페인판(版)이라 칭할 수 있는 고유의 독특한 양식인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만도 7작품에 이른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착공한 지 13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건설 중에 있다.

가우디가 일생을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르셀로나의 `메디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명문가 `구엘` 가문 출신의 `에우세비 구엘`의 일생을 통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정적 후원뿐 아니라 진정으로 건축을 이해한 사람이다.

모 생명보험회사의 본사 사옥을 설계할 당시, 발주처 대표자의 한마디에 외국 잡지에 실린 건물과 동일한 외관의 설계가 확정된 적이 있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 그 축소판의 지점이 들어선 그 건물은 당시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악의 건축물로 비판받았던 게 40여 년 전이다. 아직도 건축사는 건축주로부터 독립성을 담보받지 못하고 있다. 건축주가 상상한 건축물이 그대로 도면화(圖面化)되고, 늘 인허가 일정에 쫓기는 열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운 건축물과 도시경관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건축사에게 진정한 후원자는 설계 대가의 많고 적음보다는 진정으로 건축을 이해해 주는 건축주다.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회원권익보호위원장·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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