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우문기 감독 족구왕

`대한민국 족구 하라고 그래!` 할 때의 그 `족구`가 아니다. 족구는 웃음하나로도 세상을 초록빛으로 바꾸는 `청춘(靑春)`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스펙, 스펙, 스펙. 그리고 취업, 취업, 취업. 이걸 빼면 꿈과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연가이며 세상을 향해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유쾌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 최고의 독립영화로 주목 받고 있는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은 약간 어설픈 설정과 서투른 연기에도 오히려 그런 순수함과 열정으로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막 전역한 24살의 복학생 홍만섭(안재홍). 식품영양학과의 거의 유일한 남학생으로서 토익 시험은 본 적도 없고 학점은 2.1이며 학자금 이자 대출 갚기에도 빠듯한 전형적인 가난한 고학생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이 있으니 그건 바로 과 친구들과 함께 족구를 하는 것. 하지만 이미 학교 족구장은 면학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없어져 버렸고 이에 만섭은 과 절친 창호(강봉성)와 함께 족구장 건립 서명운동에 나선다. 그러던 중 영어 원어민 교수의 수업 시간에 만난 캠퍼스 퀸 안나(황승언)에게 만섭은 첫 눈에 반하게 되고 우연한 시비에 휘말려 안나의 남자친구인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 강민(정우식)과 족구시합을 벌이게 된다. 이 시합에서 만섭은 강민에게 굴욕을 안기고 이 족구 경기가 SNS에 퍼지면서 학교는 족구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 속에서 캠퍼스 족구대회가 열리게 되고 식품영양학과 만섭 팀과 복수심에 불타는 강민이 속한 해병대 토목과 팀이 운명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영화 족구왕의 제작사인 `광화문 시네마`는 웬만한 상업영화를 뛰어넘는 수준의 대중성을 가진 영화를 만드는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이다. 그 특징이 이번 작품에 오롯이 드러난다. 몸값이 하늘을 찌르는 인기 배우는 단 한명도 출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들은 어디선가 본 것처럼 친근감이 느껴지고 분명 이 작품을 계기로 보다 많은 영화에 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그리 참신하다고 할 수 없다. 이전부터 우리들에게 익숙한 하이틴 로맨스의 공식을 따라가고 있지만 영화의 장점은 디테일을 충분히 살려 그 안에서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 하고 있는 점이다. 대학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복학생들의 오락거리 족구를 소재로 한 점이나 대학교 곳곳의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실제 선후배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만화책의 컷 같은 화면 배치와 족구 경기에 참가한 이들의 `학과 깃발` 디자인 등은 감독의 디자인에 대한 세심한 욕심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대학교를 암울하게 지배하고 있는 `취업 최우선 주의` 풍조를 위트 있게 풍자하며 영화의 주제를 놓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꿈이 있고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섭은 다른 어떤 대학생들보다 훌륭해보인다. 감독은 바로 만섭처럼 젊은이들이 세상에 조금 당당해질 수 있기를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처럼 족구왕의 매력은 결코 한 가지 장르로만 설명되지 않는 청춘의 순간들을 알뜰히 챙긴 `청춘영화 끝판왕`으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페퍼톤즈의 `청춘`도 꼭 끝까지 듣기를 강추한다. 청춘의 설렘과 희망이 과연 어떤 멜로디일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젊음은 그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통째로 흥정을 할 수가 있지`(문병란, `젊음` 中)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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